[하반기 경제운용계획]‘규제완화案빠진 투자활성화’ 효과의문

  • 입력 2003년 7월 14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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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은 투자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내외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촉진해 불황의 늪에서 한국 경제를 건져내고 장기적으로 경제 체질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방안에는 기업투자의 걸림돌로 꼽혀온 △노사관계 △일관된 정부정책 △규제완화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빠져 있다. 이 때문에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특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이날 정부 보고를 받은 뒤 “정부가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아 무원칙하게 처리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외국인 투자의 부진 원인으로 정책의 불확실성을 드는데 어떤 것이 불확실한지 토론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산업현장에서 실제로 느끼는 감각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만이 살길’로 나선 배경=정부는 공식적으로 현재의 경기상황을 ‘불황’이라고 인정했다.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두 분기 연속 감소하면 ‘불황’이라고 정의한다는 것. 올 1·4분기(1∼3월)에 이어 2·4분기(4∼6월)에도 줄어들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올 하반기에도 회복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 올 상반기처럼 투자부진과 노사분규가 이어지면 연간 3% 성장도 어렵다는 게 정부의 인식이다.

정부는 이런 불황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 편성 △근로소득세와 특별소비세 인하 등 감세(減稅) △추가적 금리인하 등 직접 할 수 있는 경기활성화 대책은 거의 다 내놓았다. 이제 경기회복에 가장 강력한 처방인 민간 투자활성화만 남은 셈이다.

▽어떤 투자활성화 대책이 있나=정부가 가장 비중 있게 내세우는 대책은 임시투자세액공제율을 현행 10%에서 15%로 5%포인트 늘리는 것. 기업이 100억원짜리 기계를 구입하면 상반기까지는 10억원(세액 기준)을 세금에서 돌려줬으나 하반기에는 15억원을 공제해 주겠다는 것이다. 정부 스스로가 ‘경제회생을 위한 앰풀 주사’ ‘대기업 투자유도를 위한 특별 세일’이라고 부를 만큼 긴급 처방이다.

외국기업 임직원에 대한 소득세율을 총급여액의 18%로 단순화한 것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수단이다. 증빙서류를 갖출 필요가 없고 누진세율이 적용되지 않아 특히 다국적 기업의 본부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고액 연봉의 최고경영자들에게 유리한 제도다.

정부는 이와 함께 삼성전자와 쌍용자동차의 수도권 공장 증설에 대해 허용 여부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국적 및 기업규모에 따라 수도권 입지 여부를 결정하는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겠다’고 밝혀 하반기 중 허용하겠다는 방침임을 내비쳤다.

▽효과는 여전히 의문=현 정부 출범 후 국내외 기업은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 ‘노사관계 불안’을 꼽아 왔다. 또 ‘일관되지 않고 불투명한 정부정책’도 주요 투자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나 의지가 빠져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7일 한국에 진출한 미국 유럽 일본 등 76개 주요 외국인투자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투자환경 개선 방안’에서 개선이 필요한 사안 1위는 ‘노사관계’(124점)였다. 이어 △정부정책 투명성(70점) △인건비(67점) △행정규제(55점) 등이었다.

홍익대 김종석(金鍾奭·경제학) 교수는 “국내외 기업인의 투자위축은 현 정부의 시장질서 유지 능력에 대한 불신이 큰 요인”이라며 “노사문제, 정부 지분 매각, 규제완화 등 주요한 사안에 대해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정책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許贊國) 선임연구위원은 “정부는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근본원인에 대한 인식이 덜 돼 있다”며 “가장 큰 이유는 노사문제와 정부의 신뢰성 추락인데 이에 대한 대책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재계 및 노동계 반응=전경련은 “올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기업 투자활성화를 통한 경기 회복에 둔 것은 바람직하다”며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면 민주노총은 “노동정책이 성장논리의 희생양이 됐다”며 “참여정부가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에서 외국자본과 재벌이 줄기차게 요구하던 각종 특혜를 고스란히 반영함으로써 빈부격차를 확대하고 사회갈등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올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
투자활성화―기업투자관련 세제지원 강화(임시투자세액 공제율을 10%→15%로 확대)―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에서 최저한세율 배제―추경 집행과 공공기관 투자(한전 등 5000억원 규모 확대)―외국인 임직원에 대한 근로소득세 경감―외국인 투자환경 개선(세제지원, 자유무역지역과 관세자유지역 통합, 외국인기업 전용단지와 외국인투자지역 일원화)―지방이전기업에 대한 지원 강화(세제 금융 지원)―수도권 규제 합리화
자금흐름 개선 및금융시장 안정―기관투자가 육성 위해 기관투자가에 대한 공모주 배정 비율 확대―주가 하락 때 손실 줄여주는 장기주식투자상품 개발―신용불량자별 특성 감안해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 운영
서민 중산층 생활안정―청년 및 취약계층 고용안정 지원―근로자 세제지원 강화
대외경제 환경변화에 능동적 대처―다수 국가와 동시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칠레와의 FTA 비준 조속 이행)―농어업 구조조정과 수출 촉진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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