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폭실험' 확인 파문]野 “北 核개발에 血稅 퍼준 꼴”

  • 입력 2003년 7월 1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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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고영구(高泳耉) 국가정보원장이 “북한이 1997년부터 핵개발을 위한 고폭실험을 해왔고 이를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98년 4월부터 파악하고 있었다”고 밝힌 것이 10일 정치권에 복합적인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한나라당은 “핵폭탄급 충격”이라며 DJ와 햇볕정책에 대해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일부 강경파는 대북 송금 의혹에 대한 철저한 재조사를 촉구했다. 민주당은 “국민 불안을 조성하지 말라”고 반박했지만 당내 일각에선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탈(脫)햇볕정책 전주곡’이 아니냐”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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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강경파 목소리 커진 한나라당=강경보수파인 김용갑(金容甲) 의원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DJ는 북의 고폭실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현대 금강산관광기금 5억달러를 포함해 그동안 10억달러 이상을 북측에 제공한 셈이다”며 “북의 핵개발 자금을 대준 DJ는 건국 이래 최대 역적”이라고 말했다.

이주영(李柱榮) 의원도 “DJ가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한 정도로 봤는데 우리를 위협하는 북의 핵개발에 돈을 대준 반역행위를 한 셈이다”라며 “따라서 새 특검의 대상을 ‘150억원+α’ 비자금 사건으로 한정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번 파문으로 대북 송금 사건의 재조사를 규정한 새 특검 법안을 ‘150억원+α 비자금 수사’로 수정한 홍사덕(洪思德) 원내총무 등 온건파의 당내 입지는 크게 위축됐다.

박진(朴振) 대변인은 논평에서 “그동안의 대북 지원은 북한동포를 위한 것도, 통일비용의 조기 지출도 아니었고 결국 우리를 공격하고 위협할 핵무기를 만드는 데 국민의 혈세를 대준 셈이다”며 “노무현 정부는 대북 현금지원 사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탈햇볕정책 전주곡이냐’=신당 관련 갈등에 이어 정대철(鄭大哲) 대표의 거액 수수 의혹 사건까지 터진 민주당은 이날 당 지도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장전형(張全亨) 부대변인이 구두논평을 통해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내용을 확대해 국민 불안을 조장해선 안 된다. 한반도 평화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정치적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며 야당의 공세를 반박했을 뿐이다.

반면 민주당 일각에선 국정원이 극히 민감한 북핵 개발 의혹을 사실상 확인해준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대표적 햇볕론자인 김성호(金成鎬) 의원은 “고 원장의 발언은 궁극적으로 햇볕정책을 흠집내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만약 이것이 참여정부가 햇볕정책의 궤도 수정을 위한 근거를 찾기 위한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정보위원인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은 “그동안 정부에 대해 북핵 개발 실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지를 계속 다그쳐왔지만 정작 이처럼 엄청난 사실을 내놓을 줄 몰랐다”며 “이 정도 사실이면 햇볕정책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韓-美-日 대응은▼

국가정보원이 9일 북한의 핵 고폭실험 사실을 확인함에 따라 한미일 3국간의 공조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언급은 북한이 1994년 제네바합의에도 불구하고 핵개발 동결 약속을 위반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특히 70여차례 고폭실험을 한 것은 북한의 핵개발 움직임이 단순한 협상용이 아니라 실질적인 개발 목적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핵동결 약속 위반 사례가 속속 공개됨에 따라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미국과 일본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일본이 북한의 핵 고폭실험 사실 공개에 대해 아직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한미일 3국간의 공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확실하다. 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한미일 3국 정부가 이 같은 정보 공유를 바탕으로 북핵 문제를 협의했기 때문에 한미일 공조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미국과 일본은 앞으로 대북 압박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특히 대북 경수로 지원 건설공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일 양국은 경수로 사업을 전면 중단하기보다는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미국의 강경 방침을 누그러뜨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경수로 사업이 중단되면 북한이 폐연료봉 재처리 강행 등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렇게 되면 북핵 위기는 한층 고조될 수밖에 없다.더욱이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북한의 고폭실험을 알면서도 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현금을 지원했던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미국 일본은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햇볕정책 계승 방침’에 제동을 걸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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