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기흥/北核정보 ‘이상한 유통’

  • 입력 2003년 7월 2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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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북한의 핵실험 장소를 발견했다는 뉴욕 타임스의 1일 보도는 기사의 사실 여부와 함께 보도시점과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한국 미국 일본의 차관보급 대표들이 2일부터 이틀간 미국 워싱턴에서 북핵 문제 대책을 논의하기 직전에 민감한 사안이 보도된 것이 우연만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가 3월 2일 동해 상공에서 북한 미그기가 미 정찰기에 접근했던 비디오 화면을 3개월여가 지난 지난달 30일 뒤늦게 공개한 것도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타임스는 익명의 정보당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 북한에서 실제 핵실험의 전단계인 고폭(高爆)실험 장소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했으며 북한이 중장거리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핵탄두를 개발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미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가을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단정적으로 발언한 적이 있고, CIA도 같은 평가를 내린 데다 북한도 핵무기를 갖고 있음을 미국에 시인한 사실 등을 고려하면 이 같은 보도가 특별히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이 “북한이 여러 차례 고폭실험을 했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고위 당국자는 미국의 강경파들이 의도적으로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정보를 흘렸을 개연성에 관해 “그걸 어떻게 내 입으로 이야기하느냐”며 “언론이 더 잘 알지 않느냐”고 말했다.

문제는 한반도의 장래가 걸린 북핵 문제에 관해 미 정보기관이 이런저런 정보를 미 언론에 흘릴 때 한국 언론으로선 이를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에 관한 정보의 대부분을 정찰위성 등 미국의 정보에 의존하는 상황에선 앞으로도 한국이 북핵의 실태에 관해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 관계자들이 타임스의 이번 보도 내용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불안을 부채질한다. ‘위기관리’는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 문제다. 그런데도 요즘 우리 정부는 북한과 관련된 미국측의 정보나 요구는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남북대화의 걸림돌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희망’과 ‘사실관계’는 엄격히 분리해야 한다.

미 강경파의 입김이 더욱 세지는 듯한 북핵 국면을 바라보는 심정은 그래서 더욱 조마조마하다.

한기흥 정치부기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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