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최병렬號' 출범]'강한 야당' 깃발…政局 찬바람

  • 입력 2003년 6월 26일 18시 36분


한나라당은 26일 두 차례의 대선 패배 후유증을 수습하고 ‘포스트 이회창(李會昌)’ 체제를 열 새 사령탑으로 최병렬(崔秉烈) 후보를 택했다.

한나라당 대의원들이 노무현(盧武鉉) 정권에 맞설 ‘강력한 야당 건설’과 ‘변화’를 역설해온 최 후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최 대표는 당을 대선 패배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해 내년 17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요구도 받고 있다.

최 대표 체제를 기다리고 있는 정국은 간단치 않다.

최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강한 야당론’을 강조하며 노 대통령에게 새 특검법안 수용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날 청와대가 한나라당의 새 특검법안을 거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만큼 우선 새 특검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의 대치정국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최 대표는 23만명의 매머드급 선거인단의 직선에 의해 선출된 만큼 그동안 한나라당을 이끌어온 임시지도부와는 그 권한과 리더십이 전혀 다르다.

새 지도부의 대여(對與) 강공드라이브는 다른 전선에서도 파열음을 빚어낼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은 특검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대통령 주변 친인척 비리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고 민생과 관련 없는 법안 처리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원내 투쟁 방침을 천명해 왔기 때문이다.

국회 처리를 앞둔 각종 정책에서도 여야간 신경전은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최 대표 체제는 국정운영노선에서 노무현 정부와 ‘기본 코드’가 다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의 기업 및 노사정책 등을 둘러싸고 여야간 견해차가 뚜렷하다.

다만 최 대표 스스로 ‘개혁적 보수’ ‘합리적 보수’를 강조하고 있어 정국을 과거처럼 ‘무한정쟁’으로 끌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당내에서도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당장 당내 개혁파 의원 7인방이 다음주 탈당을 결행할 경우 최 대표 체제는 출범과 동시에 당 전열 정비에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최 대표가 이날 대표수락연설에서 탈당파 의원들을 향해 “이제 한나라당은 새로운 길을 갈 것이다”며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의가 우리 정치의 개혁이라면 새로운 한나라당의 건설에 동참할 것을 부탁한다”고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 대표는 취임 직후 탈당파 의원들을 잇달아 접촉하며 잔류를 설득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선 후유증을 치유하는 과제도 만만치 않다.

당 대표 경선이 종반전에 접어들면서 상대 후보 비방전으로 번지는 등 과열돼 경선 후 당내 갈등을 수습하지 않고서는 당의 거듭나기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최 대표에게 석패한 서청원(徐淸源) 의원측은 벌써부터 “표차가 근소하기 때문에 최 대표가 일방독주는 못할 것”이라는 말을 흘리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 제기된 ‘경로당’ 이미지를 극복하고 ‘불임(不姙) 정당론’에 대한 당 차원의 대책도 시급하다. 두 차례 대선 패배 이후 만연한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차기 리더를 육성해 집권 기반을 구축하는 작업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최 대표가 주요 당직에 젊은 초재선 의원들을 전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인큐베이터론’으로 차기 리더 육성을 약속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 대표 체제의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崔대표 TK서 예상밖 선전▼

승자에게는 자신과 여유가 넘쳤다.

26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의 새로운 사령탑에 오른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대표 수락연설 내내 주먹을 불끈 쥐고 굵은 땀을 흘려가며 “강한 야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

또 최 대표는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서청원(徐淸源) 후보의 친화력, 김덕룡(金德龍) 후보의 개혁정신, 강재섭(姜在涉) 후보의 젊음, 이재오(李在五) 후보의 야당정신, 김형오(金炯旿) 후보의 디지털 마인드가 필요하다”며 경쟁자들을 번갈아 치켜세웠다.

패자들도 차례로 연단에 나서 “당의 화합과 총선 승리를 위해 헌신하겠다”(강재섭), “더 큰 정치인이 되라는 뜻으로 알고 당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서청원), “당의 미래와 변화를 위한 양심세력이 되겠다”(김형오)며 일제히 최 대표의 승리를 축하했다.

이날 대회장은 개표 시작 때부터 팽팽한 긴장과 희비가 엇갈렸다. 특히 최, 서 후보의 개표참관인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득표상황을 메모지와 휴대전화로 보고하는 등 신경전을 벌였다. 이 때문에 선관위는 각각 2∼4개 시도의 투표함을 섞어 지역별 성향이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개표 초반 부산 경남(PK)과 호남 지역 투표함이 열리면서 최 후보가 앞서 나갔다. 그러나 서 후보가 수도권과 경북에서 선전하며 한때 2000여표까지 앞지르기도 했다. 최 후보는 오후 들어 역전에 성공했으나 마지막으로 개표를 마친 충남에서 서 후보에게 몰표가 쏟아지자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

최종 개표 결과 지구당위원장들의 지지 후보 성향에 따라 표 쏠림 현상이 극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빅4’ 후보들은 예상대로 자신들의 텃밭에서 선전했다. 최 후보는 PK에서, 서 후보는 충청권에서 대승을 거뒀다. 김덕룡 후보는 전북 지역을 독식했고, 강 후보는 TK지역에서 예상대로 1위를 차지했다.

변수는 영남과 수도권이었다. 서 후보는 서울 경기 인천에서 ‘조직표의 위력’에 힘입어 최 후보를 1000여표 차로 누르며 기세를 올렸다.

반면 최 후보는 강 후보의 아성으로 여겨졌던 TK지역에서 기대 이상의 표가 나와 수도권의 열세를 만회한 것으로 분석됐다. 최 후보는 또 혼전이 예상됐던 강원 제주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득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한나라당은 ‘노령당’ 이미지를 고려한 듯 식전행사에서 젊은 층에 인기가 많은 ‘도깨비 스톰’의 화려한 타악 공연과 인라인스케이트를 동원한 당기 전달식까지 준비해 눈길을 끌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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