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특검연장 거부]여야 "盧, 특검 면담은 중립성 훼손"

  • 입력 2003년 6월 23일 18시 54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3일 법리(法理) 문제를 거론하며 대북 송금 의혹사건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율사 출신 여야 의원과 강금실(康錦實) 법무장관이 노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치열한 법리 논쟁을 벌였다.

▽연장 불가는 대통령 고유권한인가=판사 출신인 강 장관은 “고유권한이다”며, 그 유사한 예로 “검사가 피의자의 구속기간 연장을 법원에 신청할 때 판사가 ‘그 정도에서 수사를 마무리하라’며 기각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또 “특검이 수사기간 연장을 신청한 것은 (대북 송금 의혹에 대한) 수사가 더 확대되거나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 아니라, 150억원에 대한 증거를 보완하겠다는 취지였다”고 밝히고 “연장 불가는 절차적 문제에 대한 결정일 뿐이다”며 정치적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특검은 국민적 의혹 사건을 수사해 국민을 납득시키기 위해 도입된 것인 만큼, 그 수사기간의 연장도 법 취지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며 “노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권한 남용”이라고 반박했다. 검사장 출신인 최병국(崔炳國) 의원은 “판사가 일반 형사사건의 구속기간 연장 신청을 거부하는 것은 피의자의 인권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라며 “그러나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은 국민적 의혹을 풀어주기 위한 것으로, 차원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변호사인 같은 당 심규철(沈揆喆) 의원은 “150억원 의혹 수사 문제가 특검 연장 여부를 결정짓는 것 자체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특검의 핵심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왜 그런 무모한 일들을 벌였느냐’인데 이에 대해선 수사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이어 “DJ를 조사하지 않는 특검도 문제이고, 그 조사의 가능성을 봉쇄한 연장 불허 결정도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민변 출신인 민주당 천정배(千正培) 의원은 회의장 밖에서 기자와 만나 “150억원 사건과 대북 송금 사건이 직접적 관계가 있는지를 특검도 아직 확신할 수 없는 단계이다”며 “150억원 사건은 검찰에서 더욱 정교하고 가혹하게 수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과 특검 면담의 법률적 문제점=노 대통령이 수사기간 연장 여부 결정에 앞서 21일 강 장관과 청와대 비서진 등을 배석시킨 채 송두환(宋斗煥) 특검의 보고를 받은 것에 대해 여야 의원 모두 “특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사 출신인 민주당 함승희(咸承熙) 의원은 “그렇게 행동한 특검도 한심하지만, 대통령의 법률 자문인 법무장관이 ‘문서로 하면 된다. 대통령이 특검을 만날 이유가 없다’고 조언했어야 했다”며 “국민 눈엔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부당한 얘기를 하자’는 의도로 비치지 않겠느냐”고 따졌다.

법무장관을 지낸 한나라당 김기춘(金淇春) 법사위원장도 “대통령이 어떤 사건에 대해 결정할 때 장관 부르고, 검찰총장 부르고 하면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돼 검찰이 아무리 잘해도 국민은 신뢰를 안 한다”며 “법무장관은 무너져가는 정의와 법질서를 지키는 데 분발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 장관은 “워낙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라면 직접 대면해서 수사기간 연장 신청 요지를 설명하는 것도 적절하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한나라 비난 일색-민주 환영 일색▼

▽한나라당 의원총회=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3일 대북 송금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요청을 공식 거부하자 한나라당은 발끈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박희태(朴熺太) 대표는 인사말에서 “앞으로 엄청난 국민적인 저항이 일어날 것이며, 우리도 당력을 총집결해 총체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전의를 다졌다.

대북뒷거래진상조사특위 이해구(李海龜) 위원장도 “사법부에 대한 폭력이자, 국민을 우습게 본 것이고, 야당과 막가자는 것”이라고 강경하게 비난했다.

이 위원장은 특검 수사가 계속돼야 하는 이유와 관련해 △대북 송금의 주역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고 △대북송금 5억달러 중 3억달러의 행방이 묘연한 데다 △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현대비자금 150억원 수수의혹은 ‘곁가지’에 불과하며 △대북 송금 ‘5억달러+α’ 부분은 손을 대지 못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엄호성(嚴虎聲) 의원은 “(여권이) 특검 거부 명분으로 남북관계 훼손 운운한 것은 사실 관계를 호도한 것이며 호남의 기존 지지층 이탈을 염두에 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또 “현대상선이 산업은행 대출금을 갚을 때 국내 다른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갚았다는 제보가 있다”며 추가 의혹을 제기했다.

안택수(安澤秀)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전 승낙을 받고 돈이 갔는지가 밝혀질 시점에서 특검 수사가 중단된 것이 한탄스럽다. 김 전 대통령의 노벨상 관련 부분도 밝혀져야 한다”며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도 촉구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회의 후 “노 대통령과 민주당의 특검 방해 망동은 국민의 심판과 역사의 단죄를 받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민주당 의원총회=노 대통령이 특검의 수사 기한 연장 요청을 거부한 직후에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는 환영 일색이었다. 특히 김옥두(金玉斗) 이윤수(李允洙) 이훈평(李訓平) 의원 등 동교동계는 “청와대에서 오랜만에 당론을 수용했다”며 밝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정대철(鄭大哲) 대표는 인사말에서 “당무회의 등에서 모은 ‘특검 연장 불가’라는 당론을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그 후로도 여러 경로로 의견을 전했는데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다행”이라며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이어 “한나라당의 정치 공세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리 당이라도 경제와 민생 챙기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해 야당의 반응에 신경을 쓰는 표정이 역력했다. 다른 의원들도 ‘특검 종결’에 대해서는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은 채 삼삼오오 모여 한나라당의 강경자세에 대한 대응책을 숙의하는 데 골몰했다.

최근 특검 수사 기한 연장에 반대해 왔던 김근태(金槿泰) 의원은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특검 종결로 당분간 국민 여론이 사분오열되겠지만 정치권이 이를 악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나라당이 대승적으로 국민 통합에 동참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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