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불법도 명분 있으면 수용한다니

  • 입력 2003년 5월 29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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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홍 노동부 장관이 노동정책에 대한 오락가락 발언으로 기업과 노동계 양쪽 모두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 권 장관은 27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불법이라도 주장이 정당하면 들어줘야 한다”고 말하더니 29일 경총과의 간담회에서는 “불법행위에 대해 노사를 막론하고 엄정 대처하겠다”고 정반대로 말했다. 장관의 말이 이렇게 쉽게 바뀌어서야 누가 정부 정책을 믿겠는가.

두 가지 상반되는 발언 가운데 27일 발언이 권 장관의 본심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경총에서의 발언은 27일 발언의 파문을 진화하기 위한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권 장관은 “노동부는 노동자를 대변해야 한다”고 노동계 편향을 자처하는 말도 했다. 이러니 기업은 불안해하고 노조는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드는 것이다. 그 결과 발생하는 후유증은 국민의 몫이다.

특히 “불법이라도 주장만 정당하면 들어줘야 한다”는 발언은 현 정부 노동정책의 본심을 드러낸 듯하다. 장관이 법질서를 무시하는 듯한 말을 버젓이 하니 이해집단들이 법을 우습게 볼 수밖에 없다. 주장을 하더라도 ‘절차의 정당성’은 갖춰야 한다. 권 장관은 “주장은 주장대로 들어주고 불법은 불법대로 처리하면 된다”고 했지만 전국을 혼란에 빠뜨린 화물연대 운송거부 때 정부는 누구에게도 불법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다.

권 장관은 “기업은 분식회계와 변칙상속을 하면서 노조를 법대로 다스리지 않는다고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무슨 뜻인가. 함께 불법을 저지르고 있으니 서로 모른 척 하자는 것인가. 그가 말하는 노사관계의 균형이 ‘불법의 균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장관으로서 입에 담을 발언이 아니다.

노동부는 노사 양측의 목소리를 듣고 합리적인 정책을 내놓는 곳이지 노동단체가 아니다. 또한 노동부 장관은 다른 부처 업무와의 조화까지를 고려해 국정 전반을 생각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편향된 시각으로 특정집단의 이해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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