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장관급회담]核 표현수위 싸고 시종 신경전

  • 입력 2003년 4월 29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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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제10차 남북 장관급회담은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남북이 계속 협력해 나가고 6·15 남북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재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북한이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3자회담에서 핵무기 보유를 시인함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열린 이번 회담의 핵심은 북핵 문제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공동보도문에 담는 것인가였다.

30일 새벽 “남과 북은 한반도 핵 문제에 대한 쌍방의 입장을 충분히 협의하고, 이 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계속 협력해 나가기로 한다”는 문항을 공동보도문에 넣기로 극적 타협을 하기까지 남북은 회담 예정 시간을 훨씬 넘기며 신경전을 펼쳤다.

당초 우리는 북한 핵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의 준수’ 등을 넣자고 요구했으나 그런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다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거듭 다짐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회담은 처음부터 이전 회담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대북 지원과 경제협력 등 ‘비교적 수월한’ 안건에 상당 시간을 할애한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초반부터 ‘핫이슈’인 북핵 문제로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했다.

남측은 처음부터 북핵 문제를 공동보도문에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고 북측을 압박해 나갔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외교적 해결에 남북대화 채널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주변국들에 확인시키면서 북측이 더 이상 다자회담에서 남측을 배제하지 못하도록 당사자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진전된 언급을 공동보도문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중대 위반행위를 엄중하게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입장도 고려됐다.

남측 회담 관계자는 “핵 문제가 관건인데 북측이 (공동보도문에) 아예 못 담겠다고 하면 회담은 깨진다”며 결연함을 보이기도 했다.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설명했으므로 더 이상 북측의 태도 변화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북측은 공동보도문의 표현 수위를 낮추기 위해 ‘의도된 진빼기 작전’을 펼치며 남측 대표단을 곤혹스럽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은 이미 지난해 10월 평양 8차 장관급회담과 올해 1월 서울 9차 장관급회담에서 원론적 수준의 핵 문제 관련 문구를 공동보도문에 포함시켰으면서도 “이번에는 담을 수 없다”며 오히려 강공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양측은 북핵 위기가 증폭된 상황에서 이번 회담이 결렬될 경우 남북관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인식, 힘든 줄다리기 끝에 막판 합의를 도출해 냈다.

한기흥기자 eligius@donga.com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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