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구 국정원장 임명 강행…정국 급랭

  • 입력 2003년 4월 25일 18시 48분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25일 고영구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경제기자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25일 고영구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경제기자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25일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 후보자를 정식으로 임명하자 한나라당은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이를 비판하는 등 양측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특히 국회 정보위원회가 ‘고 후보자는 국정원장으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낸 것을 지적해 노 대통령이 ‘월권’이라고 말한데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

▽노 대통령 국회정보위 정면 반박=노무현 대통령은 25일 고영구(高泳耉) 신임 국정원장에 대해 국회 정보위가 ‘부적절’ 의견을 낸 것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고 원장을 접견하면서 고 원장이 “대통령이 정국을 이끄는 데 부담이 될까 걱정이다”라고 말을 꺼내자 “그건 잘못된 것이다. 국회는 국회로서 할 일이 있고,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있다. 서로 권한을 존중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좋지만 국회 운영을 안 한다, 법안 심의를 안 한다, 추경도 안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추경은 민생과 경제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대통령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걸 볼모로 하겠다는 것이다”고 한나라당을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국정원이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할 때 행세하던 사람이 나와서 색깔을 씌우고 하느냐. 소신을 갖고 하시라”고 주문했다.

노 대통령은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 태도에 대해서도 “정책만 묻지 않고 때때로 모욕을 주니까 감정을 절제하기 어렵다. 논리적으로 답변하면 기분 나빠하고 모욕으로 사람을 제압하려고 한다. 또박또박 답변하면 마치 어른이 아이 대꾸하는 것 나무라듯이 ‘어디다 대고 대꾸야’ 그런 식이다”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 성토장 된 한나라당=25일 소집된 한나라당 긴급 의원총회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성토장이었다.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부터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인사말에서 “노 대통령이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 고영구씨를 국가정보원장에 임명했는데 무슨 오기고 독선인가”라면서 “지금이라도 고씨를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행은 특히 ‘국회가 대통령 권한에 대해 월권을 한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겨냥, “(국회가) 제도에 있는 견제 검증 역할을 한 것인데 이처럼 말한 노 대통령의 국회관이야말로 큰일 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맞받았다. 그는 또 “추경은 민생과 관련된 것으로 볼모로 삼아선 안 된다는 발언은 국회를 간섭하는 것”이라고 역공을 폈다.

이규택(李揆澤) 원내총무도 언론에 보도된 노 대통령의 발언을 자세히 소개한 뒤 “한마디로 반민주주의 반의회주의의 폭언에 가까운 발언”이라고 가세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성토와 함께 추경예산 삭감, 인사청문회법 개정 추진, 대통령 탄핵소추 등 강경한 대응책을 쏟아냈다.

안택수(安澤秀) 의원은 “헌법 제65조에는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에는 탄핵소추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념적으로 문제가 많은 고씨를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은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을 위배한 것으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추경을 삭감한다는 등 강경 대응은 인사청문회와 권력 분립의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적절치 않다”면서 “고씨 임명으로 노 대통령의 좌파적 행보가 알려졌고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알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