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장이 판단할 사안인가

  • 입력 2003년 4월 22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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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구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어제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반국가단체 관련 ‘소신’이 논란을 빚고 있다. 그는 “현행 국가보안법상 ‘정부를 참칭하는 단체’를 반국가단체로 보는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며 북한을 반국가단체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북한을 주된 감시 대상으로 삼는 정보기관의 수장이 한 말이라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여진다.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국가보안법 개정 여부는 국기(國基)와 관련된 중요 사안이다. 고 후보자는 “북한이 대남혁명노선을 폐지한 것이 확인될 경우” 등의 단서를 붙였지만 이 문제는 국정원장이 단독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등 모든 여건이 성숙한 후에 충분한 여론수렴을 거쳐 결정돼야 할 일인 것이다.

지금은 전임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우리 사회의 대북(對北) 경계심이 많이 해이해진 상태다. 북한이 대남적화노선을 포기했다는 징후 또한 전혀 없는 데다 핵 위기도 여전히 심각하다. 이럴 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할 정보기관 수장이 오히려 사회통념보다 앞서 가는 견해를 밝힌 것이 과연 신중한 처신인지 의문이다. 고 후보자의 대북관은 자칫 국민을 혼란케 할 가능성이 있다. 또 북한이 우리의 대북정책을 오판할 우려도 있다.

고 후보자는 국정원의 개혁을 주문받고 임명된 인물이다. 청문회에서도 그는 국정원을 탈(脫)정치화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조직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국보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식의 발언이 국정원 개혁의 근저에 깔려 있다면 곤란하다. 여러 의원들이 고 후보자의 이념과 안보의식에 의문을 제기한 것처럼 그의 진보성향이 자칫 정보기관 본연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고 후보자가 할 일은 국가안보를 위해 국정원의 역량을 집중하는 데 있다. 과연 반국가단체 언급이 그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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