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재호/행정수도와 美軍이전의 ‘함수’

  • 입력 2003년 2월 23일 19시 07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주한미군 이전 및 감축 논쟁이 심화되고 있는데 행정수도 이전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궁금하고 불안해서다.

행정수도 이전은 노 당선자의 핵심 대선 공약 중의 하나다. 그는 “집권하면 ‘신 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를 만들어 1년 내에 계획 및 입지 선정, 2∼3년 내에 토지 매입을 마침으로써 임기 내에 착공하겠다”고 공약했었다.

공약대로라면 행정수도 이전 사업은 주한미군 기지 이전과 재배치 또는 감축과 필연적으로 겹치게 된다. 한미 양국은 2011년까지 미군기지와 훈련장을 재배치하기로 이미 합의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관계의 최근 기류를 감안하면 그 시기는 앞당겨질지도 모른다.

행정수도 이전을 위해 노 당선자가 첫 삽을 뜰 때쯤이면 용산의 미 8군사령부는 서울 외곽이나 후방으로 옮겨 가기 위해 이삿짐을 싸기에 바쁠 것이다. 동두천 캠프 케이시의 미 제2사단 병사들도 더러는 새 기지로 옮기기 위해, 더러는 한국을 영원히 떠나기 위해 군장을 꾸리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우선 수도권의 ‘안보 패닉’ 현상이다. 미군도 뒤로 빠지고, 행정수도도 후방으로 빠질 경우 1000만 서울 시민이 느낄 불안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누가 북한의 공격을 억지하고 서울을 지킬 것인가.

어떤 면에서는 북한이 더 두려울 것이다. 북핵 위기가 심화되면 미국은 부담 없이 영변의 핵시설을 때릴 수도 있다. 그동안 치고 싶어도 못 친 것은 휴전선에 전진 배치된 주한미군과 수도 서울 때문이었다. 결국 한반도의 불안정성은 그만큼 증대될 것이다.

노 당선자가 이런 점까지 염두에 두고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기야 선거를 앞두고 무슨 공약인들 못하겠는가.

문제는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면 주한미군에 대해선 좀 더 신중히 접근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격화된 미군 감축논쟁은 노 당선자와 참모들, 특히 방미 대표단이 대통령 취임식도 하기 전에 미국에 대놓고 “한미관계 재조정” 운운함으로써 비롯됐기에 하는 소리다.

행정수도 이전과 주한미군 재배치, 감축은 밀접히 관련돼 있다. 정책결정자라면 마땅히 양자를 연계해서 봐야 한다. 행정수도가 언제 어디로 옮겨 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미군기지 이전과 감축 논의부터 나와서는 곤란하다. 미군이야 떠나든 말든 행정수도 이전한다고 삽질부터 할 것인가.

해법은 있다. 노 당선자가 행정수도 이전을 이유로 주한미군 감축논쟁의 중단을 미국에 역제의하는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에 몇 년이 걸릴지 모르므로 미군 재배치나 감축도 여기에 맞춰서 시간을 갖고 차분히 논의하자”고 제의하는 것이다.

어차피 행정수도를 이전하면 용산기지도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방부가 새 행정수도로 옮겨 갈 것이므로 완벽한 연합방위 태세의 유지를 위해선 용산기지도 그 부근으로 가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한미간에 접점(接點)을 찾고 미래에 다가올 불안과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감정 싸움의 양상마저 띠고 있는 미군 감축논쟁을 한미 어느 쪽의 체면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이성(理性)의 마당으로 끌어내야 한다.

노 당선자 스스로도 “행정수도 이전은 10년 이상 걸리는 국가적 사업이므로 국민의 강력한 뒷받침이 없으면 안된다”(1월 18일 KBS TV 토론)고 뒤늦게 시인하지 않았는가.

하나의 정책은 언제나 다른 정책들과 연계돼 있음을 알고 열린 마음으로 끊임없이 수정 보완해 나가는 것, 그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다.

이재호 국제부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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