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막가는 北, 손 놓은 南

  • 입력 2002년 12월 16일 18시 12분


북한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핵시설 봉인과 감시 카메라를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하겠다”는 최후통첩성 통보를 한 데 이어 어제 조선중앙방송은 “전쟁의 검은 구름이 다시 몰려오고 있다”며 사생결단의 결의를 다졌다. 정치적 조건이 붙은 인도적 지원은 거부하겠다는 ‘배부른 발상’까지 내놓았다. 아무리 주민단속용이라 하지만 북한이 전쟁을 입에 올리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태도는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미온적이어서 걱정이다. 핵위기라는 심각한 현안을 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언동을 무시해서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핵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 그러는 것인가. 만에 하나 정부가 햇볕정책에 연연해 핵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의지조차 없는 것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지난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고 하지만 그날의 주 의제는 여중생 사망에 대한 사과였지 북 핵문제 해결을 위한 조율이 아니었다. 지금이야말로 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던 정상외교를 가동할 시기다. 북 핵문제처럼 긴급하고 중대한 현안이 생겼을 때 한미 정상이나 외무장관이 회동하지 못한다면 한미공조가 굳건하다는 말을 믿을 국민은 더 이상 없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 밖에서는 이미 미국 중국 러시아가 북 핵문제를 다룰 협의체 구성을 논의 중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중 러 외무장관 및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대표와 접촉해 해결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핵문제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확대해석해서도 안 되지만 그 파장을 과소평가하는 것 또한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 임기 말 정권이 ‘개점휴업’ 상태로 지내다 준비가 덜 된 차기 정권에 핵문제를 그대로 넘겨 혼란을 자초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정부는 핵문제를 당장 최선을 다해 다루되 우리가 주도한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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