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씨 국정농단 규명을”

  • 입력 2002년 9월 19일 16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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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정부가 임기말로 접어들자 그동안 설(說)로만 제기돼 온 권력실세들의 인사 청탁 및 이권 개입 등을 보여주는 증거와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들의 증언〓정치권 관계자들도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공직인사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국영기업체 이사진 인사는 권 전 고문이 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 전고문만 OK하면 인사는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권 전 고문은 공기업 사장 등으로 점찍은 사람을 김 대통령의 관저로 데리고 들어가 즉석에서 승낙을 받아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권 전 고문이 현 정부 초기부터 이같은 권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정권 초기에는 권 전 고문은 일본에 장기체류 중이었고, 김중권(金重權)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막혀 활동이 제한됐다는 것. 이 시기에는 권 전 고문 계열 인사들보다는 김홍일(金弘一) 의원이 주도했던 당 외곽조직인 연청 관계자들의 공직 진출이 많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을 지낸 E씨, 토개공 감사를 지낸 Y씨, 정보통신연구원 감사를 지낸 A씨 등이 연청 계열 인사들이다.

그러나 99년 김중권 전 실장이 퇴임한 이후 상황이 일변했다. 16대 공천에서 탈락한 김명규(金明圭·가스공사 사장), 조홍규(趙洪奎·관광공사 사장) 전 의원 등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국영기업 책임자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권 전 고문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민주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권 전 고문은 김대중 정부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두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한화갑(韓和甲) 민주당 대표를 권 전 고문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이는 실상을 모르는 얘기다. 권 전 고문에 비하면 한 대표는 권력의 근처에도 못갔다고 할 정도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 전 고문의 영향력은 지난해 말 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이후 급속히 약화되기 시작했고, 올봄 ‘진승현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종언을 고했다.

▽“권노갑의 인사개입 실상은 이렇다”〓뉴스위크 한국판은 최신호에서 김대중 정부의 실질적 ‘권력 2인자’로 불려온 권 전 고문이 각종 인사에 개입했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문서들을 입수해 보도했다.

권 전고문측으로부터 입수했다고 잡지측이 밝힌 문서중에는 이상철(李相哲) 정보통신부장관, 조창현(趙昌鉉) 중앙인사위 위원장, 유상부(劉常夫) 포스코 회장 등 각계 인사들의 이력서 수십통이 포함돼 있다.

조 위원장은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권 전 고문에게 사회각계 신진인사 25명의 명단을 제출하는 등 권 전 고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문서 중에는 2000년 2월23일 ‘권노갑 고문실’ 명의로 청와대 이만의(李萬儀) 공직기강 비서관에게 보낸 팩스도 있다. “두 분 이력서를 보내오니 참조바랍니다”는 내용의 팩스는 김재경 전 서울시의원과 김숙원 평민당 동해시지구당 위원장의 이력서였다. 이후 김재경씨는 강원랜드 감사실장, 김 전 위원장은 환경부 산하 한국자원재생공사 감사로 각각 발령이 났다.

99년 9월17일 권 전 고문의 특보였던 최규선(崔圭善)씨가 산업자원부장관에게 보낸 편지도 있다. 편지에는 “지난번 고문님께서 석탄합리화사업단 이사장에 추천했던 최승길씨(전 민주당 유세위원회 부위원장)가 국민대 기업경영학과를 정식으로 졸업했음을 증명하는 증빙서류를 함께 첨부하니 참조하기 바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한나라당의 비판〓한나라당은 19일 뉴스위크 보도내용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공세를 폈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이날 선거전략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 가신들의 국정농단 정도를 짐작케 하는 중요한 자료와 국가기밀 문서들이 권 전 고문의 사무실에서 쏟아져나온 것은 과연 이 정권이 나라인지, 구멍가게인지 구분이 가지 않게 한다”고 비난했다.

이어 “이 정권 초기 ‘이수성(李壽成) 키우기’, ‘이인제(李仁濟) 끌어들이기’, 최근의 ‘정몽준(鄭夢準) 이벤트’ 등도 모두 가신들이 준비해온 작품이었음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김 총장은 이어 “권노갑 비밀파일은 이 정권의 실정과 비리, 정치공작을 밝히는 데 꼭 필요한 자료다”며 “국정감사 직후 국정조사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이어 “청와대 청소담당 위생직원도 4억원을 받았는 데 실세중의 실세인 권씨가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며 “이는 검찰이 진상을 축소 은폐하는 것으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라고 공세를 폈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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