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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4월 18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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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사 방북 문제 오락가락
한국 정부는 미국이 북한에 ‘특사’를 파견할 것을 오랫동안 종용해 왔다. 한국은 이번 임 특보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관심을 가진 만큼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조속히 대사를 파견하도록 미국에 다시 요청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미 대사 방북 허용 발언이 공개된 지 며칠도 안 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북-미 협의에 필요한 조건이나 환경이 아직 조성되지 않았으며 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장애 요인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 특보가 전한 김 위원장의 발언에는 조건이 전혀 달려 있지 않았는데도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그렇게 말한 까닭은 무엇일까. 북한이 북-미 대화의 재개를 앞두고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고 선전공세를 하는 것인지, 방북에 대한 적절한 대가 지불을 요구하는 것인지, 또는 특정한 장애 요인 제거를 대화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지 불투명하다.
북한이 말하듯 협의를 위한 조건이나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면 미 특사가 방북해야 할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리랑축전 참관이나 금강산관광이란 말인가. 현직 미 대사의 방북이 실현되려면 공식통로로 정식 초청의사를 표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또 그의 방북 목적이나 성격에 대한 상호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 대화재개에 응하기로 했다는 것을 공식 발표하며 그 합의의 일환으로 제1차 회담이 평양에서 개최된다든가, 대화 재개에 대한 합의 실천을 위한 의제 결정 등 실무준비를 위한 예비회담이 평양에서 열린다는 등 공식 의사 표명이 필요할 것이다.
대화를 위해 특별한 대가를 제공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견해이다. 만약 북한이 저해요인 제거를 방북조건으로 고집한다면 미 대사의 조기 방북계획은 무산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았다는 임 특보의 인식과 보고가 정확하다면,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이 조건을 달고 나온 일은 김 위원장의 위신이나 신뢰성에 관련된 문제로 비약할 수 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뉴욕 통로로 북-미 양국이 협의해 미 대사의 방북 성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고 양국간 대화재개가 실현되기 바란다.
북한이 갖는 외교정책 대안 선택의 폭은 제한되어 있다. 우선 북-일 관계개선에 대한 북한의 노력이 성과를 못 보고 있다. 3차에 걸쳐 일본과 국교정상화 교섭을 벌였던 2001년에 비해 올해의 환경은 북측에 뚜렷하게 불리해졌다. 일본 내의 권력구도 변화와 국내외 정책 의제의 우선 순위 변동, 여론동향 등 대(對)북한 상황이 악화됐다. 소위 ‘납치사건’ 해결을 전제로 하지 않는 북-일 수교는 상정할 수 없게 됐다. 또 국교수립 없이 대규모 경제협력도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유럽연합(EU) 여러 국가와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각종 교류가 전개되고 있으나 북한의 경제적 요청을 충족시키기에는 많은 제약요인이 작용하고 있어 대북 지원의 내용 규모에 한계가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가 북한 외교의 상당한 비중을 갖고 있으나 북한의 핵심적 이익을 증진 또는 담보한다는 면에서는 불충분하다.
▼미국과 머리 맞대고 협상을
그렇다고 북한이 이러한 국제환경 속에서 남한과의 관계를 기본적으로 대폭 개선하는 정책을 선택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번 임 특보 방북 때의 합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분야에서 약간의 진전만 보일 뿐 남한과의 극적 관계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진행 중인 대통령후보 예비경선 과정에 나타난 ‘노풍(盧風)’의 의미, 여권 정권 재창출에 대한 기본적 태도, 대권 본선과 관련된 여러 가지 유혹과 충동, 또 냉철한 분석이 교착되어 북의 대남 전략의 유동성을 높이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남북한의 내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해보면 북한에는 미국과의 관계 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 뚜렷해진다. 체제의 안전과 권력지도층의 생존, 그리고 경제건설을 이룩하기 위해 북한은 미국과 정면으로 마주앉아 창조적 협상을 전개하는 길을 갈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최종 결단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영진 미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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