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이번엔 '홍위병' 파문…사상 첫 '野' 단독국회

  • 입력 2002년 2월 19일 18시 43분


반쪽국회
국회는 19일 한나라당과 자민련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야당 단독국회’를 열었다. 그러나 본회의에 불참한 민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박승국(朴承國) 의원의 ‘홍위병’ 발언에 대해 “백색테러”라며 강력히 반발하면서 본회의장 안팎의 대치상황은 더욱 심화됐다.

○…야당 의원들로만 진행된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은 박 의원이 “북한에 엄청난 물량을 쏟아 붓고도 우리가 얻은 것은 고작 이산가족상봉 세차례뿐”이라며 포문을 연 이래 햇볕정책 성토 일색으로 흘렀다.

박 의원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군에 지뢰제거 명령을 내리고, 북한 선박이 북방한계선(NLL)과 제주해협을 안방 드나들 듯 유린하자 기다렸다는 듯 무해통항권을 사실상 인정해줬다”며 현 정권에 대해 ‘김정일(金正日) 정권의 홍위병’이라고까지 비난했다.

같은 당의 현승일(玄勝一) 의원은 “전교조가 펴낸 교재에는 북에 파견한 우리 요원을 ‘간첩’이라고 하는 등 북의 편을 들고 있다”며 “햇볕정책 실시 이후 친북세력이 떠오르고 국기(國基)가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의 홍위병 발언이 전해지자 본회의장 밖에 대기 중이던 민주당 의원들은 “좌시하지 않겠다”며 흥분했다.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너무나 중대한 문제여서 어떻게 대응할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며 초강경 대응을 시사했고, 이어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는 박 의원에 대해 징계를 요구키로 결의했다.

○…이만섭(李萬燮) 국회의장이 대정부질문 답변을 위해 잠시 정회를 선포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의장실로 몰려가 야당 단독국회 개최에 격렬히 항의했다.

김경재(金景梓) 의원은 “야당 단독국회는 헌정사상 처음”이라고 따졌고, 송영길(宋永吉) 의원은 “한나라당이 어제 국회의원의 발언권을 물리적으로 막은 것은 의정활동의 근간을 무너뜨린 것이다”고 항의했다.

이 의장은 “의장으로서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홍위병 발언은 속기록에서 삭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회의가 속개된 뒤 “외교안보문제는 초당적 대처가 필요하므로 여당 의원들에게도 질문할 기회를 주고 한꺼번에 답변을 듣자”며 산회를 선포했다.

○…이 의장은 오후 2시 의장석에 나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여당과 하루만 더 의견을 절충해달라”고 설득했으나 한나라당이 거부하자 개의를 선언했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원내총무는 “어제 국회 공전은 집권당 의원이 국가적 견지에서 묵과할 수 없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라며 “우방국 대통령을 ‘악의 화신’ 운운할 수 있는 거냐”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 당의 (발언저지) 행위는 국회의원으로서 있을 수 없는 발언을 중단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나, 앞으론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민주당 이낙연 대변인은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무의 해명은 거짓말”이라며 “한나라당이 송석찬(宋錫贊) 의원의 발언을 저지한 것은 ‘악의 화신’ 발언 때가 아니라 이회창(李會昌) 총재 아들의 비리의혹 대목에서였다”며 속기록을 제시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