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대선후보 조기가시화 득실계산 분주

  • 입력 2001년 10월 28일 18시 54분


《10·25 재·보선 참패 이후 여권 핵심부가 국면전환 방안의 일환으로 대선후보 조기가시화 및 전당대회 조기개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그 득실을 둘러싼 논란이 여권 안팎에 분분하다. 특히 전당대회 개최시기 문제는 민주당 대선 예비주자들의 이해와 직결돼 있어 이런 논란이 자칫 여권 내 권력투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여권▼

▽여권의 득실〓지방선거 이전인 내년 3월경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조기가시화 찬성론자들은 먼저 후보 선출을 앞당김으로써 후보의 인지도와 지지도를 높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예비주자 중 선두를 달리는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의 경우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보다 평균 10%가량 뒤지고 있는데 이를 표로 환산하면 250만∼300만표(97년 대선 당시 유권자 기준).

후보조기가시화 찬성론자들은 “이 정도 표차는 한두달 사이에 뒤집을 수 없는 규모”라며 “후보를 조기에 가시화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지지율 좁히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당이 ‘DJ 당’으로서의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갖고 있다는 점도 후보조기가시화의 논거다. 동교동계인 이훈평(李訓平) 의원이 “이제는 대통령을 정치로부터 자유롭게 해줘야 하며 당도 ‘반(反) DJ 정서’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또 후보가 조기 가시화되면 어차피 후보 중심으로 ‘새 판’을 짤 수밖에 없어 자연스럽게 당정쇄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失)이 더 클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의 권력누수도 누수지만, 후보를 일찍 선보이면 그만큼 상처를 입을 가능성도 크다는 반박논리가 그것이다.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은 “후보를 조기가시화했다가 불미스러운 일들이 알려지면 지방선거와 대선을 포기할 것이냐”고 묻고 있다.

또 경선후유증이 장기화되거나, 자칫 일부 경선후보가 경선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할 경우 97년 대선 때 구여권이 겪었던 사태의 재판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예비주자▼

▽예비주자들의 계산법〓여론조사 선두그룹인 이인제 노무현(盧武鉉) 최고위원은 ‘국민들에게 후보의 리더십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후보조기가시화를 지지하고 있다.

이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97년 대선 이후 무려 3년 반 동안이나 이인제라는 인물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이 최고위원의 경우는 일찍 가시화하면 할수록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 최고위원도 “우리 당에 대한 기존 평가는 새로워지기 어려운 만큼 미래를 상징하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화갑(韓和甲) 김근태 최고위원 등은 “후보 조기가시화론은 특정그룹의 정치적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지방선거 후인 내년 7∼8월 전당대회를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의 바탕엔 현재 국민 인지도나 지지율 측면에서 이인제 노무현 최고위원에게 상당히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한나라당▼

▽한나라당의 계산〓한나라당은 이번 재·보선 이전에 이미 이 총재에게 “우리 당이 완승할 경우 여권은 후보조기가시화를 유일한 대응카드로 내놓을 것이며, 이인제 최고위원에게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며 대응전략 수립을 건의하는 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청지역 출신인 김용환(金龍煥) 강창희(姜昌熙) 의원의 조기 입당도 사실은 여권 내에서 재·보선 후 ‘이인제 대세론’이 급부상할 것에 대비한 선제조치였다는 것.

여기에다 이 최고위원 측이 들고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세대교체론에 대한 대응논리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는 게 이 총재 측근의 전언이다.

그러나 후보조기가시화의 실현가능성에 대해선 부정적인 견해가 대다수다. 이재오(李在五) 총무는 “레임덕을 불러올 후보조기가시화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나 동교동계가 쉽게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후보조기가시화 논의는 97년 신한국당 후보경선 때처럼 여권의 사분오열을 자초하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창혁·김정훈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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