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李會昌) 총재는 총재단회의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야당이 잘했다는 상찬(賞讚·칭찬)이 아니라 잘해야 한다는 채찍”이라고 말했다. 재·보선 결과에 흡족해 있지 말고 국민이 안심하고 정권을 맡길 수 있는 신뢰감을 얻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 총재는 “그동안 김대중(金大中) 정부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돌아선 데 대해 두려운 마음이 든다. 우리도 기대에 어긋나면 그들은 여지없이 다시 돌아서 가차없는 심판과 징벌을 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총재들도 “이제 선거도 끝났으니 정쟁(政爭)은 지양하고 민생 우선으로 나가는 모습을 확고하게 보이자” “싸움을 위한 싸움, 정쟁을 위한 정쟁은 최소화시켜야 한다”며 방향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재·보선 승리에 자만하다가는 민심의 역풍(逆風)을 맞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민경제가 바닥이어서 민심이 흔들리고 있는 만큼 자칫하면 “여나 야나 똑같다”는 양비론적 비판의 표적이 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권의 파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 총재나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정체상태를 면치 못했다는 점도 재·보선 승리가 여권의 실정(失政)에 따른 반사이익일 뿐이라는 비판론의 논거를 이루고 있다.
한나라당의 분위기 변화는 우선 대여관계의 변화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재오(李在五) 원내총무는 당장 정부의 2차 추경 예산안 편성 요구에 대해 “해줘야지”라고 한마디로 흔쾌히 답했다.
이 총무는 또 ‘이용호 게이트’에 대해서도 “일단은 선(先) 국정조사, 후(後) 특검제를 요구하겠다”고 말해 경우에 따라 국정조사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을 언뜻 내비쳤다.
김만제(金滿堤) 정책위의장도 “재벌규제 완화 등 주요 안건이 국회에 넘어 오면 여당과 협력해 처리할 것”이라고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