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방북 취소배경]북한 미사일포기 확답기피

  • 입력 2000년 12월 29일 18시 43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내년 1월20일 퇴임 전에 북한을 방문하려던 계획을 취소함에 따라 북―미 관계는 당분간 접촉이 없는 조정국면을 맞게 됐다.

클린턴 대통령은 28일 발표한 성명과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퇴임하기 전에 북한 방문을 적절히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없어 북한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북-미관계 조정국면으로▼

그는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미사일 프로그램에 관해 매우 중요한 제안을 내놓아 우리는 그 후 북한측과 미사일의 개발 및 수출중지 문제를 협의해왔다”며 “이를 계속하는 것은 미국에 분명한 이익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클린턴 대통령이 방북을 단념케 된 데는 시간 부족이라는 물리적 제약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미 언론은 클린턴 대통령이 19일 조지 W 부시 당선자를 만나 방북 추진 계획을 설명하자 퇴임하는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북―미 사이의 최대현안인 북한 미사일 문제 해결을 차기 정부로 넘길 것을 촉구해왔다.

부시 당선자측은 공개적으로는 방북이 클린턴 대통령의 결정에 달린 문제라는 견해를 밝혀 왔으나 내심으론 못마땅하게 여긴 것으로 알려졌다.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의장 등 공화당 중진의원들도 클린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방북 중단을 요구했었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들은 특히 북한이 미사일 프로그램의 포기를 ‘확약’하지 않은 것이 클린턴이 방북을 포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전제조건으로 미사일 포기를 서면으로 약속할 것을 요구했으나 북한측은 그 점에 대해서는 김 국방위원장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며 평양에 도착해서 논의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북―미 관계 개선이 부시 행정부의 손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북―미 관계가 클린턴 행정부 말기와는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부시 당선자측이 북한 미사일을 염두에 둔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구축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우는 등 상대적으로 강경한 대북정책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위접촉 당분간 없을듯▼

게다가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과 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특사 등 미국의 고위 대북창구들이 모두 교체되고 자리조차 없어질 것으로 알려져 미국이 새로운 대북 라인을 구축할 때까지는 당분간 고위급 북―미 접촉이 이루어지기도 힘들게 됐다. 적어도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검토해서 새로운 대북정책노선을 확정하고 인적 정비를 해야 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북―미 관계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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