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혜산시서 양민학살

  • 입력 2000년 12월 18일 16시 17분


북한이 지난해 2월부터 6개월간 압록강 상류 북-중 접경지대인 양강도 혜산시에서 자본주의 요소를 척결한다 는 명목으로 인민군 보위사령부를 동원해 시민 19명을 공개 총살하고, 20명 이상을 비공개 총살 및 타살했으며 600명 이상을 징역형에 처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다.

이같은 사실은 혜산사태 당시 양강도 인민위원회 군수보장국 책임지도원이었던 정진수씨(35·가명)가 19일 발간되는 월간 신동아 1월호에 자신의 목격담 등을 담은 육필증언 을 기고하면서 밝혀졌다.

정씨는 지난해 8월 말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을 거쳐 올 10월 한국으로 귀순, 현재 국가정보원의 보호를 받고 있다.

다음은 정씨 증언중 주요 내용.

△혜산사태=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99년 2월초 양강도당 책임비서겸 인민위원장인 이수길(59)에게 혜산시가 완전 자본주의가 되었으니 수습하여 주기 바람 이라는 내용의 비밀편지를 내려보냈다.

보위사령부는 3월8일부터 조(북)-중 국경을 넘나들며 장사를 하거나 아편에 중독된 사람 등 4000여명을 잡아들여 혜산시 성후동에 있는 혜명여관과 보위부 구류장 등에서 짐승취급을 하며 조사를 벌였다.

보위사령부는 4월2일 혐의가 중하다고 판단된 6명에 대해 첫 공개총살을 집행했다. 5월9일에도 오전과 오후 두차례 혜산비행장에서 13명을 사형했다.

보위사령부는 87년 신의주, 88년 평양시와 송림시 황해제철소 및 남포시, 99년 라진-선봉 등에서도 인민을 숙청했다.

△주민 반발=숙청이 장기화하자 피해자가 생긴 가족들이 이렇게 사느니 죽는게 낫다 배급도 주지않으면서 장사 좀 한다고 붙들어가면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 고 항의했다. 심지어 주민들이 국경경비대 소속 중위(31세)를 살해해 보위사령부 정문앞에 던지고 달아난 사건도 일어났다.

99년 8월8일 열린 총화(자기반성과 앞으로의 다짐 등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사상훈련) 에서 보위사령부 관계자들은 만약 장사와 자본주의 요소를 끌어들이고 반항하는 자들은 우리 혁명의 총칼로 무자비하게 찔러버릴 것 이라고 위협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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