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만난 조명록]백악관엔 '군복', 국무부엔 '정장'

  • 입력 2000년 10월 11일 01시 29분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북한의 2인자로서 처음으로 미국 땅에서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역사적 회담을 10일 가졌다. 조부위원장은 이날 국가원수급에 해당하는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빌 클린턴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예방, 1시간 동안 양측간의 누적된 현안들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웬디 셔먼 미 대북정책조정관은 이날 클린턴 대통령과 조부위원장의 회담이 끝난 뒤 “양측이 긍정적이고 솔직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담을 했다”며 양측의 접촉이 훌륭한 출발을 했다고 평가.

셔먼 조정관은 이날 회담에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다며 조부위원장이 제시한 여러 가지 제안에 대해 추가 회담을 통해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

클린턴 대통령과 조부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월 정상회담이 이번 워싱턴 접촉을 성사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에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셔먼 조정관은 설명.

○…셔먼 조정관은 김정일 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을 때 밝힌 조건부 미사일 개발 포기 문제 등을 포함, 북한의 미사일 개발문제에 대해서도 폭넓은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

셔먼 조정관은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이 몇가지 추가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며 북한이 그렇게 나올 것으로 본다고 설명.

○…8일 미국에 도착한 이래 감색 정장 차림으로 활동해 온 조부위원장은 10일 오전 백악관으로 클린턴 대통령을 예방하러 갈 때는 인민군 차수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어 눈길.

조부위원장은 이날 오전 8시반 매들린 올브라이트 장관을 만나기 위해 국무부를 방문할 때만 해도 감색 정장 차림이었으나 40여분간의 면담을 마친 뒤 로비로 나왔다가 다시 국무부 건물로 들어가 15분 후 군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클린턴 대통령과의 회담장으로 향했다.

조부위원장이 군복 차림으로 클린턴 대통령을 예방한 것은 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전달을 통해 제기한 북한의 대미 관계 개선을 군부도 강력히 지지하고 있음을 시사하기 위한 것으로 관측통들은 분석.

○…조부위원장은 당초 오전 9시15분부터 클린턴 대통령을 예방할 예정이었으나 올브라이트 장관과의 면담이 길어진데다 군복을 갈아입느라 오전 9시35분경 국무부에서 백악관으로 출발.

클린턴 대통령은 조부위원장이 예정보다 늦게 방문했음에도 1시간 정도의 오랜 시간 동안 회담.

○…미 국무부는 조부위원장 일행에 대한 경호 상의 문제 등을 우려하기 때문인지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선 함구로 일관. 중국계인 에드워드 동 국무부 한국과장은 보도진의 영어 질문에 중국어로 “모른다”고 답변하는 등 대부분의 국무부 관계자들이 북―미 회담의 세부 일정과 의제 등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었다.

국무부는 보도진, 특히 한국 특파원들에 대해선 호텔 출입을 철저히 차단.

▼ 조명록 워싱턴 도착 성명 ▼

본인은 클린턴 대통령과 중요한 현안들을 논의하기 위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여기 워싱턴에 왔다. 방문기간 동안 본인은 국무장관 국방장관과 다른 관리들을 만날 것이다.

새로운 세기로 접어든 이 역사적인 시기에 한반도의 평화 화해 환경에 상응하게 북―미 관계를 진척시키는 것은 두 나라 정부 앞에 놓인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는 방문기간 중 뿌리깊고 해묵은 불신을 척결하고 양국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진전시키는 면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미국 지도부와 솔직한 대화를 갖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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