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조명록차수 전격訪美]核-평화협정 담판 포석

입력 2000-10-01 18:49수정 2009-09-22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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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록(趙明祿)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미국 방문은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적대상태에 있는 북-미관계의 대폭 개선을 모색하는 역사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문합의는 시기와 형식에 있어 북-미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것이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기 전에는 워싱턴에 고위 당국자를 보내지 않겠다고 밝혀 온 북한이 전격적으로 군부의 최고 실세인 조 부위원장을 워싱턴에 보내리라고는 미국도 미처 예상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미국에선 지난해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지난달 25일 사임)의 방북에 대한 답방으로 북한 고위당국자가 워싱턴을 방문할 경우 백남순(白南淳)외무상, 강석주(姜錫柱)외무 제1부상, 김용순(金容淳) 노동당 비서 등이 유력한 후보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조 부위원장의 방미는 파격적이라고 할 만큼 매우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떤 의도로 조 부위원장의 방미 결정을 내렸을까. 외교 소식통들은 북한이 치밀한 현실적인 계산에 따라 단안을 내렸다고 분석하고 있다.

북한으로선 정전상태에 있는 한국전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고 평화협정 체결 등을 통해 대미관계를 개선하거나, 북―미의 최대 현안인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 등을 해결하자면 역시 이를 관장하는 군부가 미국과의 대화에 직접 나서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부의 최고실세를 대미 외교의 최일선에 투입함으로써 군부가 북한의 변화를 지지하고 있음을 대외에 천명하고, 군부를 앞세워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으로 분석된다.

북―미 양국이 클린턴 대통령의 내년 1월 퇴임을 불과 3개월여 앞두고 조 부위원장의 방미에 합의한 것은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 북한은 다음달 미 대통령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미국의 역대 정권 중 처음으로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는 등 우호적 자세를 보여온 클린턴 행정부와 가급적 관계개선을 이루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미국은 최근 남북관계의 급진전과 중국 러시아 등의 대북관계 개선으로 인해 한반도에서의 발언권이 약해진 것을 만회,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 조 부위원장의 방북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또 북―미 관계 개선이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말 레임 덕 현상을 차단하고, 국제적인 ‘피스 메이커(peace maker)’로서의 그의 이미지를 더욱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음직하다.

양국이 지난달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담에 참가하려던 김영남(金永南)북한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이 공항 검색에 대한 반발로 방미를 취소, 양국관계의 경색이 우려되자 올브라이트 장관의 사과 편지와 백남순 외무상의 답신으로 이를 봉합한 것도 관계개선을 막는 장애물을 서둘러 없애려는 의도였다.

양측 모두 관계개선에는 긍정적이지만 얼마 안 남은 클린턴 행정부 임기 내에 얼마나 진전이 이루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하는 것은 행정부가 이를 결정해도 의회동의 절차가 필요해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 양국간 연락사무소 개설문제는 이보다는 용이하지만 역시 다음달 대선에서 어느 당이 집권하느냐가 변수다.

물론 북한이 적극성을 보일 경우 남북관계처럼 북―미 관계가 일사천리로 급진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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