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상봉 귀환 스케치]밤새 울어 퉁퉁 부은채 이별

  • 입력 2000년 8월 18일 18시 42분


짧은 만남, 긴 이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영원히 못 만나는 건 아닐까. 18일 남과 북의 이산가족 방문단과 그 가족들은 3박4일간의 아쉬운 만남 끝에 또다시 기약 없이 헤어져야 하는 현실에 몸부림치며 목놓아 울었다.

▼북측 방문단 귀환▼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 북측 방문단은 밤새 운 탓인지 대부분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 식사를 하는둥 마는둥했다.

이들의 숙소인 워커힐호텔에는 ‘할아버지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형님, 살아서 꼭 다시 만나요’라는 등의 종이 피켓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버스에 오르는 북측 방문단과 남쪽 가족들을 갈라놓기 위해 경찰이 만든 인간띠를 사이에 두고 양쪽이 얼싸안거나 손을 붙잡는 모습은 남북으로 갈린 현실을 연상케 했다.

○…북의 딸 김옥배씨(68)의 어머니 홍길순씨(87)는 김포공항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오르는 딸의 손을 잡고 “이제 가면 언제 보느냐”며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북의 최봉남씨(70·여)와 언니 최봉희씨(76) 자매는 버스 창문에 손을 맞붙인 채 떨어질 줄 몰랐으며 북의 이영수씨(66)는 휠체어를 탄 노모 김봉자씨(87)에게 큰절을 올린 뒤 차에 올라 버스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가족들과 함께 ‘우리의 소원’을 노래했다.

북의 임재혁씨(66)는 치매를 앓아 휠체어에 의지한 아버지 임휘경씨(90)에게 “이제 가요. 아버지, 다시 올게요”라고 울부짖으며 큰절을 올렸다.

○…9대의 관광버스에 나눠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북측 이산가족들은 양측으로 늘어선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질서정연하게 15분만에 전원 출국장으로 빠져나갔다.

남쪽의 형 오승재씨(68) 등 가족을 만난 북한의 계관시인 영재씨(64)는 배웅 나온 조카들과 포옹을 하며 마지막 이별을 고한 뒤 ‘서울을 떠나면서’라는 제목의 짤막한 작별메시지를 남겼다. ‘오늘의 리별은 리별이 아닙니다/북과 남이 힘을 합쳐 기어이 통일의 날을 앞당겨/영원히 리별이 없도록 합시다.’

▼남측방문단 김포공항 도착▼

○…이날 오후 2시경 김포공항을 통해 서울로 돌아온 남측 방문단은 어렵게 만난 북쪽 가족들과의 이별의 아픔이 가시지 않은 듯 착잡한 표정들이었다.

북한에 109세 노모가 살아있는 줄 알았다가 뒤늦게 사망 소식을 전해듣고 방북했던 장이윤씨(72)는 “노모의 사망 소식이 믿어지지 않아 직접 확인해보려고 갔지만 북에서도 역시 같은 얘기를 들었다”며 허탈해 했다.

여동생 김선비씨(62)를 만나고 돌아온 김원찬씨(77)는 “분명히 동생 선숙(59)이도 살아있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못내 아쉽다”며 눈물을 흘렸다.

막내아들(56)을 만나고 온 서순화씨(82)는 “아들이 4남매를 키우며 잘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눈물을 글썽였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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