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가 본 이산상봉]"50년 애환 눈물로 풀어내"

  • 입력 2000년 8월 16일 19시 01분


100개의 테이블에 모여 앉아 50년전 헤어진 가족들을 기다리는 초조함. 1초가 흐를 때마다 가중되는 극도의 긴장감. 그리고 마침내 터져 나온 통곡.

변해 버린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울음바다가 돼 버린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을 지켜본 심리학 전문가들은 이들이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애환과 통한을 눈물로 풀어낸 것”으로 분석한다. 전쟁으로 생이별한 뒤 겪은 갖은 고생과 헤어짐에 따른 죄책감, 애증 등이 뒤섞여 ‘한스러운’ 눈물로 터져나온다는 것.

정신과 전문의 송수식(宋秀植·59)박사는 “서구인들이라면 가족 재회를 기뻐하며 반길 순간에 우리 민족은 그러저러한 이유로 회한의 눈물을 쏟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을 위해 준비한 선물 중에 유난히 시계나 금품이 많은 것도 힘들었던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한 걱정과 연민,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송박사는 분석했다.

그러나 만남의 장면이 85년 상봉에 비해 의외로 차분하고 담담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에 대해 심리학 전문가들은 “50년은 기다림이 최고조를 이미 넘어선 체념의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우택 연세대 의학과 교수도 “공유할 기억과 감정이 얽힌 사람들은 이미 사망했거나 너무 늙어 제대로 그 느낌을 표현하지 못하는 반면 비교적 젊은 사람들 사이에는 가슴 저미는 추억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나흘간의 만남이 끝나면 허무함과 박탈감이 더 큰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라며 “급격한 감정 폭발로 인한 스트레스를 소화하지 못할 경우 탈진이나 우울증, 고혈압, 히스테리 등의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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