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반미감정 방치' 공방]남북문제 시각차 '폭발'

  • 입력 2000년 8월 10일 19시 00분


《국회법 날치기 파동 이후 마땅한 전단(戰端)을 찾지 못하던 여야가 남북 및 한미(韓美)관계 문제를 놓고 또다시 맞붙었다.

‘반미(反美)운동과 미군철수 주장을 정부가 방치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9일 발언이 발단이 됐지만 갈등의 이면에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양당의 남북 문제에 대한 시각차가 깔려 있다.》

▽민주당의 반격〓서영훈(徐英勳)대표는 10일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이총재의 ‘반미 방치’ 발언이 명백한 사실왜곡이라고 반박했다. 이총재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사회 일각의 반미운동과 미군철수 주장을 수수방관한 것처럼 말했지만 김대통령은 그동안 국무회의 등에서 ‘한미 관계 개선을 위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좋으나 반미감정은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는 것.

서대표는 “이총재는 사실을 왜곡시켜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발언을 취소하고 앞으로도 이 같은 발언을 삼가라”고 촉구했다.

다른 당직자들도 이총재가 국익(國益)과 당리(黨利)를 구분하지 못하는 ‘소아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맹공했다. 박병석(朴炳錫)대변인은 “이총재가 대권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진단마저 왜곡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재반격〓장광근(張光根)수석부대변인은 즉각 ‘중병에 걸린 민주당’이라는 제목의 성명으로 맞받아쳤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과 노근리사건 매향리사건 등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반미의식 확산을 부추겼다는 국민적 의혹에 대해 이총재가 우려를 나타냈는데, 무조건 시비를 거는 민주당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성명의 골자.

당직자회의에서도 정부 여당을 비난하는 발언이 줄을 이었다. “마치 통일이 다 된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줘 미군철수 주장 등이 나오게 된 것 아니냐”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남북문제뿐이어서 이를 빼면 정부는 뇌사 상태다”는 식이었다.

김기춘(金淇春)의원은 “아직 대결과 화해가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인데, 정부가 이를 무시한 채 대결이 종식된 것처럼 분위기를 이끌어 불필요한 미군지위 논란 등을 유발시켰다”고 말했다.

▽‘급진적 대북(對北) 통일정책’ 논란〓민주당은 이총재의 발언 중 ‘급진적 대북 통일정책이 계층간 이념적 갈등의 심화로 국가분열의 위기감마저 느끼게 하고 있다’는 대목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급진적 대북 통일정책이란 흡수통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김대통령은 ‘무력통일 불요(不要), 흡수통일 불추진(不推進), 화해협력 우선추진’이라는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지금은 남북이 평화롭게 살기 위해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고 그러다 보면 통일이 20, 30년 후에나 가능할지 모른다는 것이 김대통령의 기본입장인데, 그게 무슨 급진적 대북 통일정책이냐”고 물었다.그러나 한나라당은 김대통령이 남북간에 평화정착을 위한 논의절차를 생략한 채 불쑥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선언하는 것 자체가 급진적 대북 통일정책이라고 반박했다.

박관용(朴寬用)의원은 “점진적인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문제 등을 해결한다는 게 종래 한미 양국의 일관된 입장이었는데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서둘러 드러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한미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야기,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송인수·윤영찬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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