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인사청문회]겉핥기 문답…자질검증 무색

  • 입력 2000년 7월 6일 18시 56분


《6일 사법부에 대한 국회의 최초 인사 검증인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는 사법 개혁 과제, 사형제도 존폐론, 국가보안법 등에 대한 대법관 후보들의 소신을 묻는 질문들이 주류를 이뤘다. 이 때문에 여야가 철저한 인물 검증을 벼르며 공방을 벌였던 열흘 전의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 인사청문회와 달리 시종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대법관 인사청문회는 여야 의원들의 준비부족을 여실히 노출한 ‘부실 청문회’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인지, 대법관 후보 개인에 대한 인사청문회인지 모를 만큼 ‘물에 물 탄 듯’했다”는 부정적 반응까지 나왔다.

물론 이날 출석한 대법관 후보 3명이 모두 그동안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는 순탄한 경력의 판사 출신이란 점도 맥빠진 분위기의 한 원인. 그러나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날 의원들의 부실한 질문은 근본적으로 준비부족 탓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 지적.

이날 청문회에서 후보 개개인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심도 있는 질문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대신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 대법관 임명절차의 투명성, 국가보안법 등에 관한 견해 등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향후 소신을 묻는 질문에 대법관 후보들의 답변도 원론적 수준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고 의원들도 이런 후보들의 두루뭉수리한 답변을 재차 추궁하기보다는 그냥 넘어가는 듯한 분위기였다.

특히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法諺)처럼 후보들의 판결문 내용을 구체적으로 인용, 당시 판결의 공정성을 따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은 준비부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대목이었다. 다만 한나라당 유성근(兪成根)의원이 이규홍(李揆弘)후보가 내린 한 해고무효소송 판결문에 대해 “한 페이지 전체가 한 문장으로 3050자에 달한다”며 판결문장의 개선을 겨우 지적했을 뿐이었다.

또 일부 의원들이 후보들의 판결성향 등을 지적한 것도 참여연대와 민변측이 청문회를 앞두고 내놓은 인사평가서를 인용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이같은 의원들의 준비부족은 이미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여야가 특위 위원장 선출문제를 둘러싸고 티격태격하다 증인 출석 요구시한마저 그냥 넘겨버렸고 청문회 하루 전에야 세부운영일정에 합의하는 파행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결국 불과 며칠 간의 ‘벼락치기 공부’를 한 의원들에게 심도있는 청문회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

▼관련기사▼

후보별 쟁점

판결 외압여부등 따져

"장발장사건 맡았다면 어떻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