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 구태]손내미는 브로커 속터지는 출마자

  • 입력 2000년 2월 25일 23시 41분


16대 총선의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지역마다 선거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려 일부 출마예상자들이 공천을 반납하는 사례까지 생겨나는 등 ‘선거공해’가 극심해지고 있다.

주로 선거를 처음 치르는 정치신인 출마예상자들에게 접근해 “표를 몰아주겠다”며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선거브로커들의 악폐는 이번 총선에서도 여전히 더욱 극성을 떨치고 있다는 게 출마자들의 호소.

▼"요구대로 주면 10억 넘어"▼

현행 선거법은 선거브로커들이 기부행위를 요구하거나 유도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당사자의 제보가 없으면 단속이 어렵다는 게 문제.

한나라당의 서울 노원갑에 공천됐다가 선거브로커의 등쌀에 공천을 반납한 윤방부(尹邦夫)연세대의대교수는 공천을 받자마자 선거브로커로 보이는 사람들의 돈 요구 전화에 시달렸으며 일부는 협박성 전화까지 걸어 괴롭혔다고 말했다.

서상록(徐相祿)전삼미그룹부회장은 민주당의 서울 강남을 공천설이 나오자 선거브로커 10여명이 몰려와 “수천표를 몰아주겠다”며 돈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씨는 이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경우 선거비용이 10억원을 훨씬 넘을 것이란 생각에 출마를 포기했다.

수원 권선에서 자민련 공천을 받았던 허문도(許文道)전통일원장관은 “지역구민 일부가 출마예상 후보들의 지원으로 선심관광을 여러번 다녀왔고 일부 사조직은 돈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이런 돈판 선거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공천을 반납했다”고 말했다.

경기 북부지역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은 J씨는 산악회 간부를 자칭하며 찾아온 선거브로커 3명으로부터 평균 1000만원씩을 요구받았다고 했다.

대전 서을에 출마 예정인 한국신당 김창영(金昌榮)지구당위원장은 “사무실을 내자 ‘○○모범운전자회’ ‘××지역총부녀회’ 등의 관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선거를 도와줄테니 식사비나 달라’고 제의해왔다고 소개했다. 김위원장은 “나중에 알아보니 그런 모임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박절하게 거절하면 나를 비난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거절하면 흑색선전 피해▼

민주당 호남지역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386세대 K씨는 “당원을 자처하는 사람이 수시로 20∼30명을 모아놓고 사무실에 연락하면 식대 정도는 줘야 한다”며 “이런 비용을 포함해 3개월 간 대략 7500만원 정도를 썼다”고 말했다.

중앙선관위 김호열(金弧烈)선거관리관은 “공명선거 차원에서 단속반을 가동해 선거브로커 단속에 나서겠으며 수사기관과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총선시민연대도 선거전이 본격화되면 선거브로커 등의 불법선거를 차단하는 운동에 주력할 방침이다.

<양기대·송인수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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