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야당의 「가시밭길」

  • 입력 1999년 3월 2일 19시 28분


한나라당의 이회창총재는 혹독한 정치적 ‘통과의례’를 치르고 오늘에 이르렀다. 집권당 대통령후보로, 그리고 야당 총재로 헤쳐온 험로, 이른바 ‘총풍(銃風)’ ‘세풍(稅風)’같은 정치적 마파람속의 1년여기간은 2일 그가 기자회견에서 술회한 대로 ‘가시밭길’이었다. 그 가시밭길의 ‘원인’이 무엇이냐를 떠나서, 그의 술회에 대해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건 아니건 느끼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그는 과거 야당지도자들과는 다른 일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사사건건 반대하고, 어깃장을 놓고 삿대질만 하던 예전의 야당총재들에 비하면 확실히 대조적이다. 외환위기극복이나 경제회생 노력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대통령에게 ‘위로’의 뜻을 밝힌 것도 일찍이 ‘구태정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야당의 입장을 조리있게 호소하고 차분하게 해명하는 자세도 구태와는 다른 무엇이었다.

이총재는 정부여당이 이른바 야당 죽이기를 포기 한다는 전제하에 정치 복원에 동참하고 여야 총재회담에도 응할 뜻을 밝혔다. 여권에서도 화답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정국해빙의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회견이 결정적으로 결(缺)하거나 회피하고 있는 두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정책대안이라고 내놓기는 했지만 과거 ‘만년 야당’이 하던 것과 차별화 된 무엇이 확실치 않다는 점이다. 집권경험이 있고, 과거 국정을 다루고 참여했던 인력집단이 머리를 짜서 제시한 것이라고는 믿을수 없으리 만큼 빈약한 내용이다. 경제 상황 진단도 ‘외환보유가 늘고 금리가 안정되고 있으나 실물경제 호전은 아니다’는 정도고, ‘시장경제원리와 기업자율을 무시한 구조조정이냐’ ‘빅딜로 실업자만 양산하기냐’는 성토 형식이다. 미래의 수권정당을 자임(自任)하는 입장 답게 보다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해야만 국민은 안심하게 된다.

둘째, 서상목(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 문제다. 이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부끄럽게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예전과 다름없이 ‘정치적 악용’‘야당 죽이기’의 뉘앙스를 풍기면서 불투명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한나라당과 이총재는 서의원 혐의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사실관계와 증빙을 들이대면서 “왜 생사람 잡겠다는 것이냐”고 투명하게 외쳐야 옳다. 그것도 아니면서 범법혐의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이른바 방탄국회가 이처럼 남발된 ‘부끄러운’ 경우는 일찍이 국회역사에 없었다. 야당은 명분과 도덕성을 먹고 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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