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인준 국회표결 스케치]고함-욕설-몸싸움 난무

  • 입력 1998년 3월 2일 20시 08분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상정한 2일의 국회본회의는 공개투표 여부를 둘러싼 여야간 논란으로 정회와 의원들간의 몸싸움등 진통을 거듭했다.

○…김수한(金守漢)국회의장은 오후3시42분 김종필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상정, 45분부터 투표가 시작됐으나 5분여만에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소란은 서쪽 기표소에 있던 자민련 김범명(金範明)의원이 먼저 “뭐하는 짓들이야. 투표를 하는 거야 뭐야”라며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정상천(鄭相千)의원도 “전부 백지야. 중지해”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후 본회의장은 갑자기 아수라장이 됐다. 곳곳에서 “백지투표 하지마” “의회주의를 포기하는 거야”라는 여당의원들의 고성이 난무했고 야당의원들은 “백지투표인지 누가 봤어. 왜들 그래” “중앙정보부야 뭐야, 백지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라고 맞받았다.

김범명의원과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은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욕설을 주고 받으며 육탄전 일보 직전까지 가는 마찰을 빚었다. 김의원은 “누구 보고 이녀석이야. 너 누구야. 혼 좀 나볼래”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정의원은 “누구 보고 그러는 거야”라며 맞대응했다.

동료 의원들의 만류에도 김의원은 분이 삭지 않는 듯 “야, 너 무릎꿇어”라고 여전히 흥분했으며 정의원은 “무슨 소리야”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자민련 이원범(李元範)의원은 발언대에 서서 “한두명이면 얘기도 안해, 전부가 백지야.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라고 소리쳤다. 국민회의 박광태(朴光泰)의원은 김의장에게 투표중지를 요구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자민련 김범명의원은 의장석 앞 연단으로 뛰쳐나와 “이런 식으로 투표하면 무효다. 백지투표다”라며 고함을 지르며 소란은 더욱 가열됐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이우재(李佑宰)의원은 “기표소 안에 들어가서 투표하는데 왜 방해하느냐. 법대로 하고 있잖아”라고 항의했으며 한나라당 의석에서도 “왜 투표방해를 해”라는 고함소리가 계속 터져나왔다.

김의장은 “지금 투표광경이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다. 의원의 품위를 지켜달라”고 거듭 호소했으나 소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에 여당의원들이 김의장에게 “이런 상태에서는 투표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며 정회를 요구했고 오후 4시5분경 김의장은 정회를 선포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의석에서는 “무슨 소리냐” “여기가 아프리카 국회냐”는 등 고함을 지르면서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

김의장은 3당 총무들을 불러 모아놓고 투표진행이 원만하게 이뤄지도록 협조해줄 것을 요구한 뒤 4시8분 투표 속개를 지시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기표소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빠져나와 명패와 투표용지를 따로따로 명패함과 투표함에 넣었다.

국민회의 자민련 의원들은 이런 한나라당 의원들의 투표에 대해 “한나라당이 백지투표를 하고 있다”면서 고함을 질렀다. 투표 초반에는 기표소 문이 훤히 열려 있어 한나라당 의원들이 들어가는 시늉만 하고 바로 기표소를 나오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자 여당의원들은 기표소 문을 닫으며 “반드시 기표하라”고 종용했다.

기표소 앞에는 여야의원들이 10여명씩 몰려서서 서로 상대의원들을 견제하는 등 신경전이 계속됐다.

국민회의 의석 뒤편의 기표소에는 한나라당 부총무단인 김호일(金浩一) 이우재 김문수(金文洙)의원 등이 지켜서서 소속의원들이 기표소에 오래 머물지 못하도록 감시했으며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은 “그냥 나오면 무효다”라며 기표를 종용했다.

○…오후3시51분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한 듯 자민련 이정무(李廷武)원내총무가 소속 의원들에게 “투표를 저지하라”고 지시하면서 본회의장 양측 투표함 앞에서는 양당 의원들이 투표를 가로막았다.

자민련 이인구(李麟求)의원은 투표함 위에 올라앉아 투표를 못하도록 했으며 투표용지 배부처에 있던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이 용지 배부를 막고 투표를 가로막으면서 두 곳의 기표소 중 한 곳에서는 기표와 투표가 완전히 중단됐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사무총장은 김의장에게 다가가 “투표방해행위를 막아달라”며 거세게 항의했고 김의장은 의사국장에게 투표 진행을 계속하도록 의원 호명을 지시. 이에 감표의원인 한영애(韓英愛)의원이 투표함의 투표용지를 넣는 구멍을 손으로 막고 투표를 못하게 하자 김문수의원이 “왜 투표를 못하게 하느냐”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한의원은 “한나라당이 집단적으로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면서 투표를 하려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투표용지를 펴보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오후4시5분 잠시 정회 뒤 투표가 다시 속개됐으나 이번엔 한나라당 쪽에서 “왜 공개투표를 하도록 만드느냐”는 고함이 터져나왔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특히 국민회의측 감표위원을 맡은 한영애의원이 “백지투표 아니냐”며 투표지를 보이라고 하자 “투표지까지 보여주면서 투표를 해야 하느냐. 공개투표를 하라는 얘기냐”며 항의했다.

이에 한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 한나라당이 백지투표에서 작전을 바꿔 공개투표를 시도하고 있다”면서 “공개투표도 국회법상 위법”이라고 맞고함을 쳤다.

투표 교착상태가 계속되자 한나라당 원내수석부총무인 김호일의원은 “우리당 의원들 중 투표를 안하신 분은 투표를 해달라”고 재촉하는 한편 상임위별 자당(自黨)간사들을 소집, 투표진척상황을 점검했다.

그러나 자민련 의원들이 기표소 주변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투표를 계속 저지하자 투표는 한동안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국민회의 자민련의원들은 김의장을 향해 “투표를 다시 하자”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본회의장 곳곳에서 여야간에 충돌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민회의 박상천(韓相千)원내총무의 의석에는 박광태 최재승(崔在昇)의원 등이 모여 투표를 저지해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진행할 것인지를 숙의.

…이에 앞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오후3시5분 의총을 끝내고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은 친분이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곳곳에서 마지막 설득 작업을 벌였다.

그러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내 담당은 국민회의 정동채(鄭東采)의원인데 왜 전화 한통화 없는 거야”(L의원) “국민회의 조홍규(趙洪奎)의원이 설득했으면 입장을 바꿨을 텐데”(P의원)라며 농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여당 수뇌부는 수시로 구수회의를 하면서 한나라당 의총 결과를 전해듣는 등 대책마련에 고심했다. 특히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와 이정무원내총무 주변에는 당직자들이 분주히 오가며 급변하는 상황을 보고하며 일일이 지시를 받았다.

〈송인수·김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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