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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2월 26일 19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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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처리 거부로 빚어진 국정공백상태에 따라 빚어지고 있는 유형 무형의 손실은 추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막대하다.
무엇보다도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대대적인 인사이동을 앞두고 있어 공무원들이 대부분 일손을 놓고 있다.주요사안에 대한 결정은 신임장관 취임후로 모두 보류됐다.
또 정부조직법이 발효되더라도 부처별로 과단위 직제 등을 정비해야 결재라인이 가동되는데 각료인선 지연으로 사실상 정부조직자체가 마비됐다. 따라서 대형사건 사고 발생 등 비상시 정부의 대처기능에 치명적인 구멍이 생길 가능성도 높다.
이와 함께 결재라인 마비로 곳곳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재정경제원의 경우 단기외채 만기연장을 위한 국가경제설명회(로드 쇼)를 27일 일본 도쿄(東京)부터 시작할 예정이나 신임장관이 임명되지 않아 정부측 참석자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후 추진방침을 결정키로 한 경부고속철도 등 굵직한 현안들도 ‘계속 보류’상태다. 2월말까지 공표토록 돼 있는 수능시험과 대입일자 등 대학입시기본계획도 신임장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정부조직개편으로 통폐합되는 부처는 업무집행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러다 국제신인도 저하로 ‘제2의 환란(換亂)’이 닥쳐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점증하고 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새 대통령이 취임했는데도 내각을 구성하지 못해 정부조직이 공황상태에 빠지는 경우는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일이다. 머리만 바뀌고 몸통은 그대로 있는 이런 경우는 우리 헌정사에도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여야의 처지가 바뀌고 ‘6·25이후 최대의 국난’이라 일컬어지는 국가비상시기다.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먼데 정부가 정치권의 볼모로 잡혀 국정은 기약없이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의 아집과 독선, 그리고 무책임이 또다시 나라를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지금은 책임의 경중을 따질 때가 아니고 여도 야도 모두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이런 국정공백상태를 불러온데는 1차적으로 야당인 한나라당의 책임이 크다. 원내 다수당이 표결 자체를 거부한 것은 스스로 민주적 의정(議政)활동을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김대통령과 여권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론몰이로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는 안이한 현실인식이 야당의 반발을 산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인식은 자칫 김영삼(金泳三)정부를 그르친 오만과 독선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경색정국을 풀기 위해 제안한 여야영수회담만 해도 그렇다. 상대방의 의사를 물어보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영수회담 방침을 공표한 것은 아직도 ‘서투른 여당’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실례(實例)로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자세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국민은 김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모든 것을 야당과 상의하는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김총리지명자의 태도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김대통령과 여당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동정권을 창출한 공동대표로서 자신이 왜 총리가 돼야 하는지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임채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