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인준 거부」 한나라黨은 「브레이크」 없나?

  • 입력 1998년 2월 26일 19시 27분


‘기호지세(騎虎之勢).’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김종필(金鍾泌·JP)총리 인준 거부에 관련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처럼 그대로 달려가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멈춘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

왜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한나라당 지도부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JP총리 불가를 천명하며 경고했는데도 김대통령은 총리 임명을 강행했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야당을 무시한 여당측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장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사정은 좀더 복잡해진다. 지역구 의원들의 이해관계와 중진들의 파워게임, 거대야당의 생존전략 등이 난마처럼 얽혀있기 때문이다.

인준거부론의 시발(始發)은 물론 한나라당 의원들의 JP에 대한 거부감이다.

당내 초 재선 등 소장파들은 지난해 병역문제로 곤경에 처한 이회창(李會昌)명예총재측이 JP와의 연대를 모색했을 때도 극력 반발했었다.

그러나 단지 JP에 대한 호오(好惡)만으로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새정부 출범날 국회 본회의에 전원 불참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에는 의문이 남는다. 한 고위당직자는 “의원들의 생존과 당의 존망이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나라당 의원들 가운데 실세인 JP총리가 등장할 경우 자신들의 지역기반이 한꺼번에 무너져버릴 것으로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우려는 수도권과 충청권, 대구 경북의 일부 지구당위원장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여권의 두 축인 김대통령과 김총리가 사실상의 연합공천을 할 경우 6월의 지방선거는 물론 16대 총선에서도 활로를 찾기가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당내 실세 중진들도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김윤환(金潤煥)고문 김덕룡(金德龍)의원 이기택(李基澤)전민주당총재 등 각 계파 보스들도 소속의원들의 생존차원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다. 여당때처럼 돈이나 자리로 계파의원들을 관리할 수도 없는 처지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히려 3월10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선명성 경쟁’까지 벌여야 할 판이다.

조순(趙淳)총재와 이한동(李漢東)대표 등 당지도부도 ‘인준통과시 인책론’이 당내에 돌면서 더욱 강경해졌다.

여기에다 선거소송이 걸려 있는 일부 의원들이 강경 분위기를 유도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을 몰아가면서 여권과의 ‘정치적 딜’을 꾀한다는 설명이다.

또 일이 점점 커지면서 “총리 인준안이 통과되면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도 증폭하고 있다.여기에 JP 인준반대를 구심점 삼아 내분이 끊이지 않는 거대야당을 통합하려는 묘한 기류까지 맞물려 있다.

이대표가 25일 의원총회에서 “우리 당이 이렇게 단합된 모습을 보여준 것은 합당 이후 처음”이라고 열변을 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래저래 한나라당은 점점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25일 국회 본회의 불참 이후 한나라당에 비난여론이 빗발쳤지만 누구도 나서서 ‘다른 얘기’를 하지 못한다.

27일 조총재가 여야영수회담에 참석하지만 재량권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당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우리당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여론의 압력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여론의 압력에 밀려 방침을 바꾸더라도 시끄러운 파열음과 함께 당의 분란이 격화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박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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