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개회된 제188회 임시국회가 10일째 헛돌고 있다. 의사일정을 잡을 때부터 여야가 한치도 양보하지 않아 본회의가 유회됐고 상임위도 정회(停會)와 공전(空轉)을 반복하더니 급기야 11일에는 추경예산 관련 정부시정 연설에 한나라당 의원이 전원 불참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정부의 시정연설은 여야 수뇌부회담이 오전 8시로 잡히면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참석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왔으나 결국은 불참한 가운데 진행됐다.
당초 예정보다 40분 늦게 열린 본회의는 고건(高建)총리가 대신 읽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듣고 10분만에 산회.
시정연설에 앞서 김수한(金守漢)국회의장은 “많은 의석이 빈 가운데 시정연설을 듣게 돼 정말 가슴 아프다. 그러나 정족수가 갖춰졌기에 예정대로 시정연설을 안건으로 상정한다”며 침통한 표정. 소수 야당인 국민신당 의원 8명은 전원 출석, 눈길을 끌었다.
○…본회의 직전 한나라당 이상득(李相得)총무는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조직법이 개정된 후 새 정부에서 추경예산안을 편성해야 한다는 우리 당의 입장과 의지를 수차례 전달했음에도 정부와 국민회의는 우리의 합리적인 요구를 무시했다”고 시정연설 불참 이유를 밝혔다.
이총무는 “새 정부 출범을 10여일 남겨놓고 물러나는 정부가 내놓은 추경예산안을 심의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며 “새 정부가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즉각 심사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 박상천(朴相千), 자민련 이정무(李廷武)총무는 공동으로 반박 보도자료를 내 △IMF가 긴축재정안 편성을 급히 요구하고 있고 △정부조직개편으로 바뀔 예산은 전체의 0.3%에 불과하며 △이번 추경안은 사실상 새 정부측과 공동으로 제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행정위도 이날 법안 심사 소위를 열고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이 각각 제출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심사했으나 기획예산처와 중앙인사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할 것인지의 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한나라당측은 “대통령 밑에 예산 기능을 둘 경우 각 부처의 정책 기능이 경직될 뿐만 아니라 인사권까지 대통령이 독식하면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당측은 “기획예산처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는 것은 IMF 상황이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것”이라며 “중앙인사위원회는 오히려 대통령의 인사 전횡에 제동을 걸기 위한 조직”이라고 반박, 접근점을 찾지 못했다.
○…고용조정 관련 법안을 다루는 환경노동위도 하루종일 삐걱거렸다. 이날 오전 11시로 예정됐던 전체회의는 한나라당 김문수(金文洙) 권철현(權哲賢)의원 등이 한나라당 운영위 회의에 참석하는 바람에 오후로 미뤄졌다.
〈박제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