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밤 사상 처음으로 3당 대통령후보 합동TV토론회가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후보는 토론의 주제였던 경제를 포함한 국정전반에 걸친 문제들에 관해 설전을 벌였다. 그러나 토론 결과는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7일 실시된 2차 합동TV토론회의 결과도 별로 나을 바가 없는 것 같다. 후보들은 21세기 한국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보여주는 대신 시종 경직된 상태로 서로간에 잘잘못을 탓하고 인신공격에 치중했다. 후보들이 TV브라운관에 비치는 자신들의 표정 몸짓 하나하나를 통해서 정치적 경제적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을 진정시키고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여유와 포용력을 보여주기를 바랐는데 그렇지 못했다. 3당 대통령후보 중 그 누구도 상대방의 정쟁공세를 극복하는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역량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정말 안타깝다.
2차 합동토론회를 각 후보가 정책제시와 비전을 마음껏 제시할 수 있는 토론의 장으로 이끌지 못한 책임은 토론회 진행 방식과 준비되었던 질문 내용에도 분명히 있었다. 2차 토론회는 정치 외교 통일 안보 분야에 관한 제반 문제를 두 시간 동안 토론할 목적이었지만 후보자들은 경제적 파국에 대한 정치적 책임공방과 내각제 개헌문제를 둘러싼 정치분야에 관해서만 약 한 시간 동안 정쟁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각 후보가 21세기 새로운 한국을 위한 통일 외교 안보 문제에 관한 정책과 비전을 나름대로 제시할 기회가 줄어든 느낌이다.
▼ 정치역량-비전 제시못해
그나마 몇 분 안되는 시간이 외교문제에 주어졌지만 후보들은 서로의 외교적 자질문제, IMF위기 책임 공방 이외에 뚜렷한 정책방안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상호질문 과정에서도 대일관계, 북한체제의 전망과 대처방안 등 주요 외교 안보 문제들도 전혀 제기하지 못했다. 단지 국방비 지출문제, 대북정책 추진을 위한 부처간의 조정문제, 한미 한중관계에 관해서는 3당 후보 모두 비슷하지만 다소 구체적인 정책대안들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IMF구제금융 위기를 위시하여 민족의 숙원인 통일문제, 주변 강대국들과의 영토분쟁, 21세기 한국의 동북아시아에서의 진취적 역할문제 등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해결하는 데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과 외국 정상들과의 담판을 주도할 수 있는 외교적 수완이 필요하다. 유권자들이 이번 2차 토론회에서 이를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해서 아쉽다.
▼ 유권자 신중히 판단해야
그러나 이러한 합동TV토론회를 지켜보면서 결코 실망만 하고 있을 이유는 없다. 우리는 대통령후보 합동TV토론회라는 방식을 통하여 새로운 선거풍토를 정착하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5년전만 하더라도 대통령후보들은 선거유세를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대규모 집회를 가졌고 청중동원 경쟁을 벌이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는 그러한 낭비적인 선거방식을 청산하고 합동 TV토론회와 같은 방식을 통해 저비용 고효율 선거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가 대통령후보들이 제시하는 정책대안과 비전, 정치적 지도력과 외교적 수완 등과 관련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 바로 합동 TV토론회가 아닌가 생각된다.
합동TV토론회와 같은 새로운 선거유세 형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토론회에 참여하는 대통령후보들은 서로의 정치적 치부를 들춰내는 데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국정 전반에 관한 정책대안과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시청자들은 대통령후보들 서로간의 정치적 공방과 폭로전에 현혹되지 않고 각 당 후보가 제시하는 정책대안과 비전의 타당성 및 성공적 이행 가능성에 관해서 사심없이 분석하고 판단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병역문제, 경선불복문제, 비자금문제와 그밖의 정치적 약속 불이행문제 등에 관한 후보자들의 잘잘못에 관해 이미 알고 있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상대 후보를 인신공격하더라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유권자들은 이제 특정 후보가 당선되었을 경우 기대할 수 있는 안정과 번영 또는 혼란과 위기, 이러한 결과들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 정도를 바탕으로 정확한 기대치를 계산해서 우리에게 가장 높은 안정과 번영의 기대치를 가져다 주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질 각오를 해야 한다. 한 번 더 남은 토론회까지 지켜본 후 21세기 한국을 안정과 번영의 길로 이끌어 가는데 가장 근접한 인물이 누군지, 어느 후보의 정책대안이 그럴싸할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를 신중히 판단하여 자신의 한 표를 꼭 행사하도록 하자.
김우상(숙명여대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