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3/「경제國恥」속 대선후보 표밭행보]

  • 입력 1997년 12월 4일 19시 54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는 영남권공략 이틀째인 4일 경주 성동시장을 시작으로 김해 밀양 마산 진주 등지에서 거리유세를 펼쳤다. 이들 지역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 대한 애증(愛憎) 때문에 이후보의 「김대통령 밟고 넘어가기」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아 한나라당은 이곳에서 국민신당 이인제(李仁濟)후보와 격전을 벌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보는 진주에서 「비상시국 선언」을 통해 대통령주재로 노사정(勞使政)과 각 정당대표 및 사회단체 대표가 참석하는 「국가비상시국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또 정부 재계 은행계의 실무자들로 「경제비상 상황실」을 만들어 종금사와 기업의 연쇄부도에 대처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후보는 또 거리유세 때마다 『현 경제위기가 정부와 대통령 탓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모든 국민이 하나로 뭉쳐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국가를 일으켜 세울 때』라며 김대통령에 대한 직공은 피했다. 그는 『1백년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은 정치가들이 서로 헐뜯고 남의 탓만 했기 때문』이라며 『지금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은 1백년전 나라를 망친사람과 같다』고 주장, 자신이 경제파탄에 책임이 있다고 몰아붙이고 있는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의 협공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산〓김재호기자〉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후보는 4일 유럽연합(EU) 15개국 대사가 참석한 주한 EU 상공회의소 초청강연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김후보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를 수용했다』며 『우리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우리 경제 체질강화의 기회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김후보는 이어 TV토론 대책반회의를 주재한 뒤 오후에는 TV유세용 비디오를 촬영했다. 김후보는 5일 자신의 취약지역인 대구지역 공략에 나선다. 5일 오전에는 대구공항에서 현지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경북대에서 취업준비생들과 만난다. 또 대구백화점 앞에서 거리유세를 한 뒤 택시기사들과 대화의 시간도 마련했다. 김후보의 대구 경북지역 공략의 핵심 이벤트는 구미의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 생가 방문. 김후보가 자신의 정적(政敵)이었던 박전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후보는 박태준(朴泰俊)자민련총재, 박전대통령의 사위인 한병기(韓丙起)전대사, 대구 경북출신 자민련의원들과 동행한다. 김후보는 김종필(金鍾泌)선대회의의장과 한전대사 등을 통해 박전대통령의 외아들 지만(志晩)씨도 함께 갈 수 있도록 설득하고 있다. 긍정적인 답변을 얻기는 했지만 지만씨가 김후보와 동행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윤영찬기자〉 ○…국민신당 이인제(李仁濟)후보는 4일 연고지인 충청권과 전북일부를 돌며 특히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를 집중 공격했다. 이후보는 이날 대전유성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따른 대책으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대통령당선자가 「임시위기관리내각」을 구성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극약처방을 제시했다. 또 『이회창후보가 「경제위기」와 더불어 「안보위기」를 초래했다』며 『(두아들의 병역문제에 관한)시비를 가리자는데 응하지 않거나 이상이 드러났는데도 사퇴하지 않으면 중대한 범법행위자로 취급하겠다』며 이회창후보를 정조준했다. 그는 곧바로 논산훈련소로 가 입영자와 부모들에게 『나도 졸병출신이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격려하며 이회창후보 두아들의 병역 문제를 최대한 이슈화하는데 주력했다. 논산―금산지구당 창당대회에서는 『이회창후보는 나라망치는데 대통령 다음으로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추상같은 심판을 내려야 한다』면서 『이곳에서 꿈과 야망을 키워 왔다. 여러분의 아들을 젊은 대통령으로 우뚝 세워달라』며 고향에서의 전폭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한편 그는 이날 새벽 조치원역에서 유세를 시작, 전주 익산 군산 서천 보령에서도 거리유세를 하며 바람몰이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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