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국무회의 연기 안팎]잃어버린 「경제주권」

  • 입력 1997년 12월 2일 20시 03분


국제통화기금(IMF)협의단과의 합의내용을 추인하기 위해 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렸던 비상국무회의의 전격연기 소동은 「경제주권」을 잃은 나라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정부는 당초 이날 새벽까지 계속된 IMF협의단과의 실무협상에서 거시경제지표 등에 관해 합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오전 8시반부터 김영삼(金泳三)대통령주재로 국무위원―비상경제대책자문위원 연석간담회를 가진 뒤 양해각서를 심의, 의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전8시20분경 회의시간보다 일찍 청와대에 도착한 임창열(林昌烈)경제부총리는 대기실에서 전화부터 찾았다. 말레이시아에 체류,밤새 연락이 되지 않던 미셸 캉드쉬 IMF총재와 간신히 연락이 닿아 실무협의의 합의사항에 관한 「최종재가」를 받기 위해서였다. 캉드쉬총재와 통화를 끝낸 임부총리는 『안하던 얘기를 한다』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는 후문이다. 전화통화에서 캉드쉬총재가 금융시장 개방폭의 확대, 재벌의 투명성 확보 등 새로운 부대조건을 제시하고 나섰기 때문. 임부총리는 급히 김대통령에게 상황을 보고했고 결국 이날 회의는 예정보다 25분 지난 8시55분경 시작됐다. 회의에서 임부총리는 그동안의 협상경위를 「보안유지」를 전제로 보고한 뒤 『(합의내용이) IMF이사회에서 통과돼야 확정되는 것인데 아직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 협상이 완전 타결된 것으로 전해지지 않도록 유의해달라』며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협상경위를 설명한 유인물을 회수했다. 10여분간의 회의후 김대통령이 『임부총리는 협상장에 다시 가야 한다. 아침 일찍 모여준 비상경제대책자문위원 여러분도 수고했다』며 상황을 정리한 뒤 비상대책자문위원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이후 국무위원들은 고건(高建)총리주재로 일반안건 심의를 마친 뒤 10시10분경 청와대를 떠났다. 이날 캉드쉬총재의 뜻밖의 추가요구에 대해 청와대측은 『IMF 주요국가들이 캉드쉬총재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추가제시한 것으로 안다』며 미국의 「압력」이 개재됐음을 암시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이게 무슨 꼴이냐』는 불만과 『아쉬우니 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자탄을 터뜨렸다. 〈이동관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