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국제거지」로 전락한 한국경제

  • 입력 1997년 11월 25일 19시 47분


▼8월29일은 무슨 날인가. 국치일(國恥日)이다.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치욕의 날이다. 1997년11월21일은 무슨 날인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적 신탁통치를 받아들이기로 한 「경제국치일」이다. 지난 30년간 연평균 8.6%의 눈부신 성장을 기록하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아오던 한국이 이제는 한 외국 신문의 치욕적인 표현처럼 「국제적 구걸자(求乞者)」로 전락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짓밟힌 자존심이 아니다. 부도위기에 직면한 나라를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걱정이고 앞으로 복합불황의 긴 터널을 빠져나올 때까지 국민들이 겪어야 할 고통이 안타깝다. 국민들 사이에는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업과 세금부담, 물가불안에다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불신까지 겹쳐 심리적 공황현상까지 일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정치적 치적으로 내걸고 국민소득 1만달러 돌파를 자신들의 업적인양 자랑하던 정치적 리더십과 테크노크라트 그리고 기업인들은 이제 말이 없다. 「국가부도」라는 위기상황을 맞았으나 어느 누구도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 없다. 오늘의 이같은 참담한 실정이 국정을 잘못 이끈 탓인데도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송구스럽다는 한마디 말뿐이었다. ▼정치권은 어떤가. 각 정당들은 나라의 위기보다 이익집단들의 눈치를 살피는데 급급하고 있다. 어제까지 집권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경제파탄의 정치적 책임마저 회피하려 들고 있다. 정책의 실패를 통감해야 할 정책당국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모순이나 들먹이며 아무 잘못도 없는 국민을 죄인으로 몰고 있다. 경제위기를 자초한 대기업들은 한술 더 떠 지금의 위기상황을 제몫 챙기기의 기회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정작 두려운 것은 우리 사회의 이런 윤리불감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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