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단일화]개헌시기등 협상 난항…TJ 막후중재

  • 입력 1997년 10월 26일 19시 37분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후보 단일화 장정(長程)은 멀고도 험했다. 95년 봄 신한국당을 탈당한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총재는 신민주공화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국민회의 김인곤(金仁坤)의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대통령에 관심이 없어. 대통령은 김대중(金大中·DJ)총재가 하고 대신 우리가 힘을 합해 내각제를 하자고 그래』 김의원은 반신반의했지만 4.11총선 직후 JP로부터 같은 제안을 받은 김의원은 총선결과에 낙심하고 있던 DJ에게 이를 전달했다. 총선직후에 김영삼(金泳三·YS)대통령의 「자민련의원 빼가기」가 시작되자 양당은 보라매공원에서 야권말살 분쇄를 위한 대규모 규탄대회를 열어 「반(反)YS전선」을 만들었다. 이후 6차례에 걸쳐 기초단체장,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공조를 과시했다. 양당은 올 들어 본격적인 후보단일화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DJ의 당선가능성 △내각제개헌에 대한 신뢰성 △여권의 대선전 내각제 개헌여부 등이 걸림돌로 등장했다. 하지만 8월이후 DJ의 지지율이 부동의 1위로 올라서고 여권의 내각제개헌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자민련은 단일화를 수용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협상막판에는 DJP단일화를 지지하고 이를 독려한 박태준(朴泰俊)의원의 막후역할도 컸다. 〈윤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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