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정국/입다문 YS]『꼭 말로 해야만 아나』

  • 입력 1997년 10월 16일 19시 50분


신한국당측이 16일 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총재의 비자금을 수사해달라며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한데 대해 청와대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의 자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이날도 『검찰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일이며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자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개입 오해」를 피하기 위한 자세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도 이날 관련 수석비서관들에게 비자금 문제에 관해 「입조심」을 하도록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이처럼 신중 일변도의 자세를 보이는 것은 신한국당이 김총재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이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김대통령의 처신과도 맥락을 함께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김대통령의 침묵에 대해 『김대통령은 침묵을 지키는 것만이 상황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떤 형식으로 입장표명을 해도 여야간 정쟁(政爭)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더욱 사태수습이 어려워질 뿐이라는 뜻이다. 한 측근은 한걸음 더 나아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 김대통령의 행보가 말하는 「무언의 메시지」에 주목해달라』고 주문한다. 아무튼 김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청와대의 입장은 어느 정도 정리돼 있는 듯하다. 실제로 한 고위관계자는 16일 『청와대의 입장은 이미 정리돼 있으나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귀띔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날이 갈수록 신한국당측이 김총재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면서 청와대측과 전혀 「사전협의」를 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상황에 떼밀리면서도 청와대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보면 정황을 짐작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게 한 핵심관계자의 얘기다. 청와대측이 비자금 수사에 대한 검찰의 부정적인 분위기에도 불구, 「검찰의 전권사항」이라고 발을 빼고 있는 것도 시사적인 대목이다. 청와대는 지난주 김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신한국당총재의 회동 일정을 취소한데 이어 17일에 회동을 갖자는 이총재측 요청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청와대 일각에선 『이총재도 결국 정쟁의 당사자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홍사덕(洪思德)정무제1장관이 15일 공선협 공청회에서 검찰수사에 반대하는 발언을 한 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즉각 『사견(私見)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김대통령과의 「교감」 여부에 대해서는 확실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김대중총재의 단독회동 요청에 대해서도 김대통령은 「시간을 갖고」란 전제 없이 『검토해보겠다』고만 말했다는 후문이다. 한 고위관계자는 『과거의 정치관행 속에서 이루어진 일을 새삼스레 「법대로」 처리, 경제에까지 충격을 주는 일을 대통령이 좋아하겠느냐』고 말했다. 이 또한 청와대의 기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검찰이 대선전 본격수사에 착수할지의 여부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그러나 이총재 진영과 청와대간에 사안을 보는 「시각차」가 차츰 벌어져가는 듯한 느낌이다. 〈이동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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