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食言-親北관련 의혹제기…「한국논단」 10월호

  • 입력 1997년 9월 20일 20시 26분


월간지 한국논단 발행인 이도형(李度珩)씨는 한국논단 10월호에 「거짓말쟁이·친공(親共)대통령은 안된다」는 제목의 글을 싣고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후보의 지난 70년대 이후 위약 식언사례와 친북 발언사례를 열거하고 김후보의 친공의혹들을 제기했다. 이씨는 김후보의 위약 식언사례로 정계은퇴선언번복 등을 열거한 뒤 「친북 친공발언」사례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한국이 자유도 빵도 없는데 반해 북한은 비록 자유는 없다고 해도 빵이 보장된다. 나의 이러한 입장은 북한공산주의자들도 인정한다』(73년1월23일 뉴욕 타임스) 『이북은 공산주의로 안정되어 있으나 이남은 민주체제도 안정되지 못했고 오히려 혼란과 불안, 민생고만 극심할 뿐이다. 김일성이 주체성 등을 확립시킨 것은 잘한 일이 아니냐』(73년4월24일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 강연) 『김일성사망 당시 정부가 취한 김일성 조문 규정 및 조문사절단 파견, 분향소 설치 불용조치는 현명치 못했다』(96년3월2일 아태평화재단 강연회) 이씨는 이어 『김후보가 지난 87년11월 대선후보등록 때 첨부한 이력서에는 「1949년 건국대 정치과입학(한국동란으로 학업중단)」이라고 기재돼 있다』며 『한때 「만주(滿洲)건국대 중퇴」를 주장하다가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 뒤 한국의 건국대 입학을 주장하는 것 같으나 49년에는 건국대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또 『같은 이력서에 1950년 6월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총살직전 탈출」로 기재돼 있는데 그 경위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또 『일본정부 수사기록에 따르면 김후보는 73년 일본내 반정부단체 초청강연 중 김일성 초상화밑에서 친북 발언을 했으며 같은해 8월 간첩혐의로 체포된 인사들과 함께 한민통 의장직에 취임할 것에 동의했다고 기록돼 있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이씨는 이어 『김후보가 지난 94년 아태재단 창설을 앞두고 베이징(北京)에 사람을 보내 북한의 전금철(全今哲)을 만나 정부와는 별도로 민간 통일협의기구를 설치할 것을 제의, 북측도 이에 동의해 「아태평화위원회」란 기구를 95년 3월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한 김후보의 해명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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