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바로세우자/좌담 ①]사조직 없애면 「低비용」가능

  • 입력 1997년 6월 2일 08시 56분


▼李政熙(이정희)교수〓「정치개혁」 문제가 다시 절박한 국가적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물론 한보사건과 金賢哲(김현철)씨 비리 등이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현행 제도로 치를 수 없다는, 더나아가 21세기 선진한국을 만들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姜汶奎(강문규)상임대표〓우선 이번 「5.30」 대통령 담화를 보고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난 92년 대선 때 여당후보였던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자신의 대선자금 규모와 내용을 모른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정치개혁 문제를 92년 대선자금 공개 문제와 직결시키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 아쉬워요. 대선자금 문제 때문에 머뭇거리고 미룰 여유가 우리에게 없다는 얘깁니다. ▼李漢久(이한구)소장〓정치개혁에 대한 기업계의 요구도 절실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마당에 정치관행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안팎의 「압력」도 강하고요. 개방정책 경쟁정책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정치분야의 생산성이 높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정치분야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각 부문에 맡길 것은 맡기고 마찰이 극심한 것에 한해서만 정치권이 나서야 합니다. ▼孔柄淏(공병호)소장〓구체적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경제계에서는 요즘 「이런 상태로는 사업을 못한다」는 얘기들이 절박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돈내고 뺨맞는 현실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는 자조(自嘲)의 목소리도 적지 않고요. 사실 사업하면서 정치권이나 관(官)에서 손을 벌릴 때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물론 이권을 위해 자발적 적극적으로 갖다 바치는 경우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경제에 대한 정치의 영향력을 줄이고 작은 정부를 구현하기 위한 토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정희〓여야 정치권도 정치개혁의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는 것 아닙니까. ▼金榮煥(김영환)의원〓대선자금 문제와 제도개선 문제를 분리하자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정치개혁은 제도적 법률적 문제이기에 앞서 정치적 역사적 문제라는 인식이 전제돼야 합니다. 또 현실적으로는 정권경쟁구도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李在五(이재오)의원〓우리는 대통령 담화가 나오기 오래전부터 당내 초선의원들 중심으로 고비용정치구조 개혁에 대해 심각히 토론해왔고 이제는 당의 중심과제로 설정된 상황입니다. 여당의 프리미엄을 버리고 야당을 할 작정으로 정치개혁을 이뤄내자는 각오입니다. ▼李良熙(이양희)의원〓저는 원론적인 입장에서 「정치개혁」이라는 개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도를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법정치」 「법치정치」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92년 대선자금 문제는 도덕적인 이슈가 아니에요. 불법이 개재되어 있기 때문에 5년이 지난 오늘 법정신에 비추어 국민적 의혹을 사고 있는 것입니다. 기존의 법제로도 공정하게 운용되고 일벌백계의 정신으로 법집행을 했다면 정치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행법 어디에 검은돈 받아도 무방하다는 조항이 있습니까. 문제는 지난해 「4.11」 총선 때 보듯이 검찰과 경찰이 바른 감시자의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불법 탈법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겁니다. 몇몇 조문을 고친다고 정치개혁이 이뤄지는 게 아니에요. 법제도와 운영의 문제가 동시에 다뤄져야 합니다. ▼김영환〓대선자금 문제를 분리하자는 것은 과거의 불법자행을 덮어버리고 새로운 법을 만들자는 것인데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누가 무슨 명분으로 엄정한 법집행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대선자금이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개혁은 계속 진행되는 것이고 6월 임시국회에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강문규〓야당은 두가지 사안을 구분할 경우 잘못하면 과거의 비리가 덮이고 법을 만들어도 편파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여야 모두 공신력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요. 야당의 주장은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제도개혁을 못하면 국민적 심판은 여야가 함께 받게 된다는 얘깁니다. ▼朴元淳(박원순)변호사〓사실 오늘의 문제는 해방이후 50년 동안 제도와 인물, 관행 등의 모순이 누적된 결과라고 봅니다. 따지고 보면 관권선거 사조직 문제 정경유착 등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현철씨 사건도 우발적인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정치개혁 방향도 총체적 구조적인 차원에서 돼야 합니다. 일시적 봉합이나 단선적 개혁으로는 아무 것도 이뤄낼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선거문제 정당문제는 물론이고 국회법, 국회증언 및 감정에 관한 법,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등의 개정을 함께 제기하는 겁니다. ▼이정희〓실제로 정치권에 몸담으면서 체험하는 현실은 어떻습니까. 돈이 필요하니 들어오는 돈을 안 받을 수 없고, 그래서 지탄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데…. ▼이재오〓지난 92년 대선 때의 자료를 조사해보니 대선자금의 40%가 유세동원비이고 30%가 홍보비더군요. 구체적으로 계산해보니 밥 사주고 술 사주고 하는 데는 돈이 별로 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동원유세를 없애는 것이 시급하고도 필수적인 개혁과제라는 얘깁니다. 또 홍보물을 뿌리는 데 동원되는 사람도 줄여야 합니다. 그래서 매스미디어를 이용하되 국고에서 비용을 부담하자고 주장하는 겁니다. 사조직 선거운동도 유사기관 설치금지를 선거개시일 1년전부터 시행토록 해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 사조직은 여당이 야당보다 많고 의존율이 높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감하게 포기하겠다는 각오로 개혁에 나설 것입니다. 여당도 발상법을 바꿔야 합니다. ▼이양희〓지난번 선거는 정말 돈 들이지 않고 치렀습니다. 돈도 없었지만 사법당국의 감시가 심해 쓰려야 쓸 수도 없었습니다. 문제는 당선된 후 지역구 관리와 지구당 운영, 의정활동 비용이에요. 이른바 세비가지고는 턱없이 모자라요. 경조사에 어떻게 빈손으로 갑니까. 그래서 빚을 지게 됐어요. 이번 기회에 6촌 이내의 친척 외에는 조의금 축의금 등을 일절 주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해주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김영환〓개인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지난번 총선을 치르면서 정말 그렇게 했어야 했는지 자책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선거빚 때문에 지금도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어요. 한푼도 안쓰고 발로만 뛰었어야 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구체적으로 명함형 소형홍보물을 돌리는 이른바 「자원봉사자」들에게 점심값이나 활동비를 줄 것이냐 말 것이냐가 상당히 고통스런 문제였습니다. ▼任左淳(임좌순)실장〓사실 돈을 쓰라는 제도는 없습니다. 제도가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지금 정치권에 계신 분들 얘기처럼 쓸 수밖에 없으니 쓰는 측면도 있습니다. 당락이 왔다갔다 하는데 못쓰게 한다고 안 쓸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습니까. 따라서 안 써도 되게 제도를 고치든지 지켜질 수 있는 선을 만들든지 하자는 겁니다. 선거자금의 수요처를 어떻게 없앨 것인가, 어떻게 안 써도 되게 만들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라는 얘기지요. ▼이정희〓정치에 드는 비용중 상당부분이 따지고 보면 결국 기업으로부터 나오는 것 아닙니까. 이른바 천문학적 규모의 정치비용 때문에 기업들이 겪는 고통과 부담도 상당할 것 같은데…. ▼이한구〓92년 대선자금으로 1조원 이상이 들었다고들 하는데 그 돈이 기업체 말고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흔히 기업계에서는 「여당은 이권 때문에 주고 야당은 시끄러워서 준다」고들 얘기를 합니다. 이제는 기업계내에서 구체적 대가성 이득보다는 「그저 안 터지는 게 이득」이라는 자조가 팽배한 분위기입니다. ▼박원순〓그 문제는 한보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 아닙니까. 지난 총선 때만 많게는 2억, 적게는 5천만원의 한보돈이 여러군데 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입수된 자료가 아니라 鄭泰守(정태수)씨의 입으로부터 나온 부분적인 리스트에 불과한 것이에요. 나머지 공중에 떴다는 1조원, 또는 수천억원의 실체는 과연 무엇입니까. 한보가 비정상적인 기업이라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그런 행태가 다른 기업체에서도 보편화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