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가 남긴것⑬/국감 부조리]『國調權 활성화 모색을』

  • 입력 1997년 5월 14일 20시 34분


한보사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정치권의 병폐 중 하나가 바로 「국정감사비리」다. 국회의원들이 국감을 악용해 기업이나 은행 등으로 부터 거액을 뜯는 실상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와 함께 국감으로 피감기관들이 겪는 어려움과 비효율성도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한보사건으로 드러난 이같은 「국감비리」와 「국감폐해」는 우리에게 과연 국감이 꼭 필요한 것이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 주고 있다. 사실 그동안 국감이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감의 존폐여부를 놓고 진지한 토론이 거의 없었던 이유는 우선 국감이 헌법에 근거한 국회의 대(對)행정부 통제권한인데다가 그런대로 주어진 기능을 해왔기 때문이다. 국감은 국회가 입안한 법률이나 예산이 잘 집행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이 과정에서 각종 비리도 밝혀내는 것이 목적이다. 사실 그동안 감사원이나 행정기관 자체의 감사실 등 행정부 내부통제가 사실상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감이 그런대로 역할을 해왔다. 민주당 李壽仁(이수인)의원은 『다른 견제장치가 없는 한 국감은 공무원들을 긴장시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정부측 인사와 국감폐지론자들은 『국감은 전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고 지적하고 『국감은 「고비용 저효율」정치의 대표적인 경우로 차제에 아예 없애거나 비리와 병폐를 없애는 보완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감폐지론자들은 『국회 상임위를 활성화하고 국정조사 발동요건을 완화하면 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따로 국감제도를 둘 필요가 없다』고 입모아 말하고 있다. 국정조사가 평소 국정의 특정사항에 국한해 일정한 요건(재적의원의 3분의1 이상 요구로 발의)에 따라 발동하는데 비해 국감은 전 국정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많은 무리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즉 국감은 정기국회 회기 중 20일간이란 짧은 기간에 전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등을 감사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수박 겉핥기」식의 요식행위에 그칠 수 밖에 없어 실효성보다는 부작용이 더 많다는 것. 국민대 행정학과 柳勝男(유승남)교수는 『기간이 짧아 감사가 피상적으로 흐르고 있으며 감사 과정에서 일부의원들의 비윤리적 행위가 드러나는 등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또한 여야의원 모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점도 그동안 국감의 문제점들이 가려져 온 이유이기도 하다. 여의도연구소 尹泳五(윤영오)소장은 『여야 통틀어 의원들이 개인적인 용무나 지역구 활동 등으로 장기간 국회활동에 붙잡혀 있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평소 시간이 많이 드는 국정조사보다는 한꺼번에 빨리 해치우는 국감을 더 선호한다』고 말한다. 여야의원들은 또 국감기간 중 자신들의 이름을 알릴 수 있고 각급 행정기관이나 기업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기 때문에 굳이 이 제도를 없애기 싫어하고 정부입장에서도 평소 매를 계속 맞기보다는 한꺼번에 몰아서 대충 맞자는 분위기도 있어왔다. 국감은 지난 72년 유신헌법 때 폐지됐다가 87년 개정헌법에서 부활된 이후 해마다 9,10월이면 온나라가 마치 통과의례를 하듯 국감을 치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상임위원회의 활성화 △국정조사 발동요건의 완화 △예산결산위원회로부터 결산위원회의 분리 △청문회의 활성화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대 정치학과 張達重(장달중)교수는 『우리 국회도 선진국처럼 상임위를 상설 운영하되 현재처럼 정치공세에 치중하지 말고 법안심의나 정책심의에 힘쓴다면 국감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여의도연구소의 윤소장도 『한보사태에서 보듯 평소 국회의 해당 상임위가 재정경제원 통상산업부 등 관계부처 장관이나 실 국장, 나아가 과장까지 불러 코렉스공법 도입 등의 문제점을 따졌다면 이처럼 비리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국가위기의 상황은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개 국회의 다수파인 여당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하는 국정조사권 발동요건도 재적 4분의1이나 5분의1 등으로 현재보다 완화,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역설한다. 또 예결위에서 결산위를 따로 떼어내 상시 회계감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윤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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