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92년 대선자금 공개여부로 또다시 파열음을 빚고 있다. 이번에도 여권내 대선후보 1순위로 꼽히는 신한국당 李會昌(이회창)대표와 최대계파인 민주계 사이에 「전선(戰線)」이 형성돼 또 한차례 거센 파란이 예상된다. 이제 92년 대선자금 문제는 여권으로서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안이 됐음에도 여권이 해법을 둘러싸고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공개시 예상되는 엄청난 파장 때문이다. 92년 대선자금 문제의 주당사자는 물론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지만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쟁점화할 경우 92년 대선 때 김대통령의 친위대로서 선거자금을 주무른 민주계 핵심인사 상당수도 사정권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돼있다.
이대표가 92년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 『여야 모두 당시의 상황을 고백하고 진실을 밝히는 기조에서 처리돼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민주계가 『혼자만 살려고 하는 발언으로 묵과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같은 위기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92년 대선자금 문제는 가뜩이나 정치적 미래에 대한 짙은 불안에 젖어 있는 민주계와 이대표 사이에 파인 감정의 골을 한층 깊게 할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여권의 대선구도도 보다 분명하게 정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계와의 관계악화 방지 내지는 관계개선을 위해 부심해온 이대표가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92년 대선자금 문제에 관해 정공법을 택한 이유에 대한 여권내 해석은 분분하다. 「정태수리스트」 수사과정에서 희석된 「법대로」 이미지의 복원을 의식했을 것이란 얘기에서부터 「민주계 껴안기」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란 얘기까지 다양하다. 민주계내에서도 92년 대선자금 문제에 발목이 잡혀있는 사람은 주류에 속한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도 계산에 넣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범민주계로 분류되는 초선의원들 중에는 92년 대선자금 문제에 관해서는 이대표의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다른 대선주자들이 이대표 발언에 처음엔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92년 대선자금 공개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아무튼 92년 대선자금 문제는 「金賢哲(김현철)파문」에 이어 「김심(金心·김대통령의 의중) 무력화」현상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 여권대선구도에 중대한 변수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대표의 발언은 이를 의식한 「적극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김심」 의존도가 비교적 약하고 92년 대선자금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李漢東(이한동) 朴燦鍾(박찬종)고문이나 李仁濟(이인제)경기지사 등이 92년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이대표와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임채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