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정국에 밀려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으나 대법원은 그저께 매우 중요한 판결 하나를 내렸다. 자민련 趙鍾奭(조종석)의원의 당선무효확정이 그것이다. 15대 총선 당선자 가운데 선거법이 적용된 첫 당선무효라는 점도 그렇지만 선거사범을 엄벌하겠다는 사법부의 강한 의지가 담긴 것이어서 이번 판결의 의미는 크다.
조씨는 자신이 직접 선거법을 위반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선거사무장과 회계책임자가 선거법위반으로 각각 징역형이 확정된 이상 연좌제에 따른 의원직 상실과 재선거는 지극히 당연하다. 물론 조씨는 피선거권이 박탈되지 않은 이상 앞으로 90일 이내에 실시되는 해당 지역구의 재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불법 탈법으로 당선됐음이 법의 심판으로 판가름난 만큼 재선거에 그가 다시 출마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본인이나 선거사무장 등이 재판에 계류중인 18명의 현역의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이 가운데 검찰의 불기소후 법원이 재정(裁定)결정으로 재판에 회부한 8명의 경우는 일단 법원이 위법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유죄판결 가능성이 높다. 결과에 따라서는 대량 당선무효사태도 예상할 수 있다. 다음 선거의 공명성을 위해서도 법원은 가급적 빨리 법대로의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되돌아 보면 지난해 4.11총선을 통해 당선된 15대 의원들 가운데 불법 탈법으로 선거판을 어지럽힌 사람들이 어디 한 둘 뿐이겠는가. 당초 검찰에 입건된 현역의원들은 1백40명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겨우 11명만 기소해 비판을 받았다. 총선거를 다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돈선거가 판을 쳤지만 막상 선관위에 신고한 당선자들의 선거비용 보고서에 나타난 평균 지출액은 평균 법정비용인 8천만원의 절반정도였다. 국민들이 아무도 믿지않는 거짓말을 의원들이 그것도 집단으로 한 셈이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자성(自省)의 큰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요행히 법망을 피해 금배지를 달고 다니지만 가슴 찔리는 의원들이 많을 것이다. 양심에 비춰 마음깊이 반성하고 다음 선거때는 법을 지켜 돈을 덜 쓰는 깨끗한 선거운동을 해 주었으면 한다. 필요하다면 현행 선거법의 미비점도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럴 경우에도 정치인들 스스로의 편의를 위한 법의 완화나 개악(改惡)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암묵적으로 폐지에 합의했다가 여론의 화살에 밀려 보류한 연좌제의 경우도 다시 폐지를 거론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