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우리의 소원은 통일?

  • 입력 1997년 3월 28일 19시 56분


한동안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었다.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여 어서 오라 어서 오라고 노래했다. 통일 앞에서는 어떤 이론(異論)도 있을 수 없었다. 왜, 어떻게 통일해야 할 것인지를 묻는 것조차 민족의 양심을 배반하는 행위였다. 통일만 된다면 방법이야 어떻든, 체제야 어떻든 무슨 상관이냐는 순교론(殉敎論)도 있었다. ▼금방 닥칠지 모를 현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북한이 조만간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관측들이 나오고 통일비용이 천문학적 액수에 이를 것이라는 계산들이 나오면서 통일에 대한 은근한 두려움마저 확산되고 있는 느낌이다. 통일이여 어서 오라가 아니라 통일이여 좀 더디 오라고 「우리의 소원」이 바뀌고 있는 인상도 있다. 통일이 이룰 수 없는 꿈과 낭만이 아니라 금방 닥칠지 모를 현실문제로 다가오면서 통일이 나에게 요구하는 희생이 무엇인지를 차갑게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통일조국을 짊어지고 나아갈 운명으로 태어났는지도 모를 대학생들조차 통일에 대한 생각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대학생의 73.5%가 통일은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심지어 통일이 꼭 안돼도 좋다고 생각하는 대학생이 19.2%나 된다는 최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조사 결과다. 다소 혼란과 경제적 부담이 되더라도 통일은 빠를수록 좋다고 대답한 대학생은 7.3%였다. 북한 식량난에 대한 반응도 놀랄 만큼 냉정하다.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이 전하는 식량난은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특히 어린이들이 겪고 있다는 참상은 듣기만 해도 안쓰럽다.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머리카락이 노랗게 탈색된 채 길가에서 쓰레기더미를 뒤지거나 풀뿌리를 캐먹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어린이들은 북한 땅에서 태어난 것 외에는 아무 죄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을 돕자는 운동은 도무지 메아리를 얻지 못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정부당국이 북한동포 돕기에 냉담하기 때문이다. 북한동포가 당장 굶어 죽고 있는데도 북한 당국이 우리 당국에 정식으로 도와달라고 직접 요청하기 전에는 한푼도 도울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외국인들이 아무리 「동포를 돕지 않는 이상한 나라」라고 비난해도 북한의 태도가 변하기 전에는 민간단체의 도움도 적십자사로 창구를 일원화해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차가운 정치논리 앞에서는 인도주의도 민족주의도 꽁꽁 얼어붙는다. 두번째는 북한의 태도다. 최근 공개된 북한 金正日(김정일)의 작년 12월7일자 「비밀서한」은 북한이 식량문제로 무정부상태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렇게 된 이유는 당 일군들이 정치사업을 혁명적으로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엉뚱한 데로 돌렸다. 모든 일을 「정치사업」으로 풀어야 한다는 이 자폐증적 정책으로는 북한 주민을 굶주림에서 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북한을 도우려는 남한 동포들의 선의까지 낙담하게 만든다. ▼민간 지원 창구 열어줘야▼ 통일의 기회는 다가오고 있는데도 기회가 가까워질수록 성숙을 더 기다리고, 북한 붕괴를 예측하면서도 붕괴는 당분간 막아야 한다는 기묘한 국면이다. 그 역설적 국면에서 통일이여 어서 오라는 노래는 부르기 쑥스럽게 됐다. 정치는 정치고, 굶주림에서 허덕이는 북녘동포를 돕는 인도주의적 차원의 식량지원이나 민간운동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다. 결국은 우리 몫일 수밖에 없는 북한 지원의 주도권을 잠시라도 미국이나 일본에 넘기는 것은 현명하지도 않고 민족의 이름에도 떳떳하지 못하다. 김종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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