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長燁 북한 노동당 비서는 고독한 35일간을 보낸 駐中한국대사관 영사부를 떠나면서 이 기간중 자칭 「수문장」역할을 해온 南相旭총영사에게 「인간적인」 말 한마디를 남겼다.
"그동안 인간적으로 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사부측은 黃비서와 金德弘 여광무역총사장이 떠나고 그에 이어 주변을 삼엄하게 경비하던 중국 공안(경찰)병력과 장비가 철수함에 따라 19일 상오 그들이 체류했던 영사부 2층방을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그러나 黃비서가 거의 5주간을 숙식했던 영사부 2층의 2평 남짓한 某영사의 방에 그가 머물렀던 흔적으로 남은 것은 동쪽으로 난 2쪽의 유리창에 덧대인 하얀색 방탄 철판뿐. 金씨가 묵었던 곳은 바로 黃비서의 옆방으로 1평을 약간 넘는 면적이었다.
이들이 사용했던 침대는 이미 치워지고 그동안 다른 곳에 옮겨져 있던 사무집기등이 다시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신변안전을 고려한 이 철판 때문에 낮에는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 형광등을 끄면 칠흑같은 어둠뿐인 이 좁은 공간에서 黃비서는 원래의 방주인이 쓰던 책상과 소파 등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명상과 집필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南총영사를 비롯한 대사관 관계자들은 黃비서가 〃정신력과 극기력이 대단했으며 무섭도록 침착한 모습이었다〃면서 대사관측은 그의 건강과 정서적 안정의 유지를 위해 `각별한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망명을 신청한 날 오후, 黃비서는 南총영사 사무실 책상에서 중간중간에 생각을 정리해가며 차분하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자술서를 썼으나 오·탈자는 물론 파지조차 전혀 없었다는 것.
鄭鍾旭대사는 黃비서가 영사부에 체류하는 동안 4∼5차례 그를 방문,정치적인 내용은 가급적 피하면서 환담을 나누었으며 黃비서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鄭대사의 얘기를 진지하게 경청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유지라는 대전제를 내세운 중국과의 망명교섭 과정에서 자신이 한국으로 직접 가지 않고 제3국에서 일정기간을 머물러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도 동요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다른 고위관계자의 설명이다.
黃비서는 영사부에 머무는 동안 하루에 한두차례 3층에 있는 세면장과 화장실에 갈 때 외에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건물 뒤쪽에 5평 남짓한 공터가 있는데도 한번도 내려간 일이 없었다.
그러나 金씨는 가끔 이곳에서 산책이나 가벼운 체조를 하기도 했다고 南총영사는 밝혔다.
영사부 내에서 머물고 있던 한국측 관계자들은 북경시내의 한국음식점에 주문한 것으로 점심과 저녁식사를 했으나 그들이 먹은 음식은 최대한의 안전확보를 위해 鄭鍾旭대사 관저에서 특별히 만든 음식을 배달했다.
南총영사는 黃비서를 美중앙정보국(CIA)요원과 唐家璇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면담했다는 보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사부는 18일밤 그동안 경비에 동원됐던 공안경찰과 6대의 장갑차 등 장비가 모두 철수하고 원상을 되찾게 됨에 따라 건물내부 정비를 끝내고 그동안 대사관으로 옮겨두었던 컴퓨터 등 사무장비를 다시 가져왔다.
이날 영사부 근처에는 아침 일찍부터 조선족 50여명이 한국행 비자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가 영사업무가 오는 24일부터 정상화된다는 얘기를 듣고는 실망을 감추지 못한채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