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建내각 출범/인선 뒷얘기]뚜껑열자「대폭」…막판 고심

  • 입력 1997년 3월 5일 19시 46분


○…「3.5 개각」은 5일 오전 尹汝雋(윤여준) 청와대대변인이 『오후 3시경 개각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이후 개각관련 인사에 대한 자료보고 책임을 맡고 있는 민정수석실이 계속 부산한 분위기여서 막판까지 일부 조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특히 文鐘洙(문종수) 민정수석은 김대통령으로 부터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오전 11시반부터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조차 불참한 채 개각대상자의 자료보고에 몰두. 또 막상 뚜껑이 열린 개각명단에 그동안 전혀 하마평이 없었던 내무 법무장관 등이 포함돼 막판에 조정이 이루어졌음을 시사. ○…이날 가장 의외였던 인사는 지난 2월13일 취임한 徐廷和(서정화) 내무장관의 경질로 서장관은 막판에 『고신임총리가 내무부시절 부하였기 때문에 선배로서 입장이 곤란하다』고 간청, 결국 김대통령이 수락했다는 것. 이와 관련, 安又萬(안우만) 법무장관도 당초에는 개각대상자 명단에 들어 있지 않았으나 내무장관을 경질하는 만큼 이미지 쇄신차원에서 함께 바꾸는 「동반카드」로 선택됐다는 후문. 한편 金기섭 안기부차장의 면직에 이어 金賢哲(김현철)씨의 비선라인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던 吳正昭(오정소·전 안기부 제1차장)보훈처장의 퇴진으로 동반퇴진설이 나돌았던 權寧海(권영해) 안기부장은 대북(對北)관계에 대한 배려와 김대통령의 두터운 신임때문에 유임이 확정. ○…인선에 관한 기본구상을 마친 김대통령은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를 마친 고신임총리와 4일저녁 청와대에서 인선협의를 갖고 일부 각료의 경우는 천거를 반영해 최종적으로 인사를 결정했다는 후문. 경제부총리로 기용된 신한국당의 姜慶植(강경식)의원의 경우는 정치인 출신이지만 「관료로서 정계에 발탁된 관료출신」이라는 기준에서 발탁됐다고 한 청와대 관계자는 전언. 강부총리는 현정부 초기에도 경제부총리후보로 거론됐으나 「5공인물」인데다 자기주장이 강한 인물이란 점에서 번번이 좌절됐으나 이번에는 업무능력과 추진력이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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