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대통령 담화]「민심 泰山」앞에 고개숙인 巨山

  • 입력 1997년 2월 25일 20시 13분


[김동철 기자]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25일 대국민담화는 한보사태에 대한 「사죄」를 바탕에 깐 「대국민 항복선언」인 동시에 지난해말 노동법 파문이후 초래된 총체적 국정난맥상을 수습하기 위한 고뇌의 결단으로 볼 수 있다. 한보사태 이후 몰아친 현정권에 대한 여론의 비난은 5공화국 말기인 지난 87년6월항쟁때 민주화를 요구하던 사회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김대통령이 이제는 거꾸로 여론의 공격을 받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는 등 정권존립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몰린게 사실이다. 이같은 위기국면에서 김대통령은 「정면돌파냐」 「우회냐」라는 두가지 길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결국 김대통령은 이달초부터 각계 인사면담을 통한 광범위한 여론 수렴작업 등을 통해 「사죄」라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이는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사즉생(死則生)」의 자세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국정최고책임자로서 김대통령이 무려 11차례나 「죄송」 「통탄」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고개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대통령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렸다』는 말로 이같은 김대통령의 심경을 전했다. 사실상 「대국민 항복선언」과도 같은 담화문을 국민앞에 발표함으로써 한보사태로 실타래같이 얽혀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은 현시국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이같은 「백기투항」이 곧바로 위기국면을 반전(反轉)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물론 김대통령의 이날 담화가 작년 말 노동법파문이후 두달간 계속돼온 대치정국을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는 할 수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권과 사회일각에서는 김대통령의 반성과 사죄에 대해서는 일단 평가하지만 92년 대선자금의 실체와 특검제도입에 의한 한보사건의 원인 및 책임규명 등 국민 기대와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고 평가절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보사태의 진실규명을 위한 TV청문회와 특별검사제 △92년 대통령선거자금 문제 △한보사태의 「몸체」논란 등은 사죄담화에도 불구하고 현안으로 계속 남아 있는 셈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그의 정치생애중 가장 「치욕적인 굴복」을 통해 국면의 반전을 꾀했지만 한보사태로 얽힌 난국을 돌파하는데는 여전히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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