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다짐 지켜보겠다

  • 입력 1997년 2월 25일 20시 13분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취임 4주년 담화를 대하는 심정은 시원하게 속이 뚫렸다기보다는 오히려 무언가 답답한 느낌이다. 오만하다고까지 한 대통령이 국민앞에 머리 숙여 사죄하는 모습부터가 그렇다. 이유야 어찌됐든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죄해야 할만큼 국정을 그르쳐왔고 이를 뒤늦게 깨달아 나라 형편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대통령이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겸허하게 시정(是正)을 약속한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의 담화가 전에 볼 수 없이 공손한 것은 그동안의 국정실패에서 연유한 국민의 불만과 불신을 읽고 대통령 자신이 적극적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지 않고는 국가를 위기에서 끌어낼 수 없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라면 김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일단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국민들이 이 담화에서 제시한 한보사건 및 대통령 아들 金賢哲(김현철)씨 처리와 국정운영 방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에 있다. 원론으로서는 무난하다고 할지 모르나 실천전략으로서는 구체성이 미흡하게 느껴진다면 문제의 핵심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국민들의 기대만큼 절박하지 못하거나 비켜간 듯한 의구심마저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는 짤막한 담화에서 모든 것을 다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없지 않다고 할지 모르나 그것이 대통령의 「진심」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한보의혹과 현철씨 문제에 관해 대통령이 분명하게 해법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국민들에게 「속았다」는 느낌을 줄 우려가 있다. 담화는 『정책차원에서 한보사건의 원인과 경위를 밝히고 관계자들의 정치적 행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를 밟아 무엇을 밝혀낼지는 제시하지 않았다. 검찰수사가 일단 마무리된 상황에서 재조사를 통해 진상과 의혹을 낱낱이 규명하겠다든지 또는 필요하다면 특별검사제를 받아들일 용의도 있다든지 하는 식의 보다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했다. 현철씨 문제만 해도 그렇다. 「아버지의 허물」을 인정하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응분의 사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성이 없다. 「책임질 일이 있다면」이라는 유보가 검찰의 「무혐의」 선언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 일으킬 수 있고 「가까이 두지 않겠다」는 것 또한 진상규명이 안된 상태에서 해외로 내보내겠다는 뜻이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다. 이미 야당측은 한보철강의 설비도입계약에 현철씨가 깊숙이 개입했고 안기부를 동원해 재계를 관리했다는 의혹까지 국회에서 제기했다. 이런 의혹들을 사과 몇마디로 덮고 넘어가려 해서는 안된다. 국회 국정조사특위에 현철씨를 증인으로 출두시켜 진위를 철저히 가리고 필요하다면 검찰 재조사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 뒤에야 사법적 책임이든지, 곁에 두지 않겠다든지를 말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김대통령은 또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노력을 가일층 강화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인사개혁을 약속했다. 정경유착과 금권정치를 청산하고 깨끗하고 능력있는 인재를 광범위하게 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원론 이상의 의미는 없다. 보다 구체적으로 청와대 보좌진을 비롯한 국정 주요 직책에서 가신(家臣) 등 특정지역 특정계파 인사를 배제하여 정실 연고주의를 척결하겠다는 결의를 천명해야 했다. 김대통령도 지적했듯이 부정부패에 대통령 측근들이 깊이 연루돼 개혁을 농락했다면 이는 바로 대통령의 인사가 전적으로 비선조직에 의존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뼈아프게 직시하고 반성했다면 이번 담화에서 인사정책의 혁신은 훨씬 큰 비중으로 제시됐어야 마땅하다. 대통령의 측근에 대한 과감한 정리 없이는 국민들로부터 믿음을 사는 원활한 국정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당정개편 역시 단순한 국면전환용이나 대선을 의식한 진용짜기로 끝낸다면 국민들의 불신은 엄청날 것이다. 세번째로 지적할 것이 차기 대통령선거와 여당후보 선출에 관한 언급이다. 김대통령은 여당후보를 당원들의 결정을 존중해 민주적이고 공정한 경선을 통해 선출하겠다고 하면서도 후보 선출과정에서 이른바 김심(金心)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을 피했다. 이는 김대통령이 아직도 정권재창출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김대통령이 진정으로 차기 대통령선거를 엄정한 중립적 입장에서 공정하게 관리하겠다면 무엇보다 먼저 여당후보 결정에 어떤 형태로든 간여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대통령 자신은 빈 마음으로 남은 임기동안 오로지 경제회생과 국가안보 등 나라와 국민을 위해 진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정당정치와 정치문화는 한단계 도약할 것이고 김대통령은 이것만으로도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겸허한 사과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의 취임 4주년 담화가 현재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처방으로서 미흡하다는 실망을 안긴 것은 대통령의 상황인식과 대응책이 투철한 구체성을 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대통령의 경우 지금까지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동안 측근의 장막에 가려져온 탓이다. 김대통령은 담화에서 다짐한 내용을 최선을 다해 실천에 옮겨야 한다. 국민들의 비판과 충언에 귀기울여 담화의 미흡한 점을 적극 보완하면서 나라 살리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사과가 진심이었는지를 구체적 실천 여부를 지켜보고 판단할 것이다. 그 결과가 납득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할 때 국민들은 끝내 대통령을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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