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후유증/풀어야할 숙제들]「돈뜯는 國監」언제까지

  • 입력 1997년 2월 21일 19시 56분


[이철희 기자] 일정기간 국회가 행정전반에 걸쳐 포괄적인 감사를 벌이는 「국정감사」 제도를 실시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 뿐이다. 이처럼 국회가 정부에 대해 고유의 헌법적 감사권한을 갖게 된 것은 오랜 세월 고질화되다시피한 행정부의 「국정전단(國政專斷)」풍토 때문이다. 지난 72년 「10월유신」과 함께 사라졌던 이 제도가 87년 민주화 열풍속에서 부활된 내력에서도 국감제도가 지닌 정치적 의미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의 존폐를 둘러싼 논의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게 또다른 우리 현실이다. 국감 폐지론자들이 주장하는 논거중 하나가 바로 한보사태에 대한 검찰수사 과정에서도 제기된 「비리」의 개연성이다. 검찰은 지난 19일 한보수사결과 국민회의의 權魯甲(권노갑)의원은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총회장으로부터 같은 당소속 의원들이 국감에서 한보에 대한 질의를 하지 않도록 애써달라는 청탁과 함께 2억5천만원을, 신한국당의 鄭在哲(정재철)의원은 중간매개자로서 1억원을 챙겼다고 발표했다. 물론 당사자인 권의원은 완강히 혐의사실을 부인하지만 이번 한보사태의 와중에서 국감이 의원들의 「검은돈 조달창구」라는 오명(汚名)을 얻을만한 정황이 조성된 것만은 분명하다. 특정인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번 한보수사과정을 통해 드러난 국감중 의원들의 자료요구 및 증인신청 실태를 살펴볼 때 이같은 정황에 대한 심증(心證)은 더욱 굳어진다. 지난 91년부터 96년까지 한보그룹 특혜의혹과 관련한 의원들의 자료요구 건수는 모두 1백9건이었으나 실제 질의건수는 46건에 불과했다. 또 한보철강 관련자료 요구건수는 34건이었으나 질의는 9건 뿐이었다. 이같이 자료요구와 증인신청으로 으름장을 놓던 의원들이 막상 감사현장에서 입을 다물어버린 정황을 「시간제약상」 또는 「의문이 풀려서…」 등의 눈으로 보아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한보사태는 국감 폐지론자들에게 더없는 호재(好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폐지론자들은 국감이 상임위 활동과 별로 다를 것도 없는데 「비리의 온상」 등 역기능만 확대되고 있다며 『상임위활동 및 예산결산심사 강화로 그 기능을 대체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아니 아직은 유지하되 운영방식을 개선하자는 주장이 대세다. 朴載昌(박재창)숙명여대교수는 『국감 폐지에 박수칠 사람은 행정부와 기업체들 뿐이며 한보게이트는 국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정치의 구조적 부패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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