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망명]與, 한보로 궁지몰린 시점 망명돌출

  • 입력 1997년 2월 13일 20시 34분


[문철기자] 북한은 한국의 역대 선거나 정권의 위기 때마다 「중요변수」로 작용해온 묘한 인연이 있다. 북한당국이나 인사의 「돌출행동」은 한국국민의 안보의식과 안정희구심리를 자극, 여권(與圈)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온 예가 많았다. 이번 黃長燁(황장엽)노동당비서의 망명사건 역시 한보사태로 정부와 여당이 궁지에 몰린 시점에 발생했다. 황비서가 정부여당을 도와주려고 망명시기를 이때로 잡은 것은 아닐테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북한변수」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87년 13대 대통령선거(12월16일)때다. 선거일을 불과 18일 앞둔 11월29일 KAL기 폭파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은 집권민정당 盧泰愚(노태우)후보가 야당의 金泳三(김영삼)金大中(김대중)후보를 꺾는데 적지않게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정부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투표일 하루전날 국내로 압송, 사건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92년 14대 대선(12월17일)을 3개월 앞두고 안기부는 「김낙중간첩사건」과 「이선실간첩사건」을 발표, 야당후보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남로당이후 최대조직사건으로 불린 이선실사건으로 야당 및 재야인사는 물론 김대중후보의 개인비서까지 구속되는 바람에 김후보는 「색깔론시비」에 시달렸다. 또한 북한은 작년 4.11총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남북간 긴장을 고조시켜 결과적으로 정부여당을 도운 셈이 됐다.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는 4월4일 「군사분계선 및 비무장지대 유지관리 임무포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한데 이어 5일부터 7일까지 연속 사흘동안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무장병력을 투입, 총선에 「북풍(北風)」을 일으켰다. 그러나 「북한변수」가 반드시 야당에 불리하게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95년 6.27지방선거를 이틀 앞둔 6월25일 김영삼정부는 북한에 15만t의 쌀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그러나 『외국산쌀을 수입해서라도 주겠다』는 김대통령의 발언이 농민들과 유권자들의 반발을 부른데다 쌀을 실은 씨아펙스호 인공기게양사건마저 터져 오히려 정부여당에 큰 짐이 됐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당국이나 인사의 돌출적 행동이 지금까지 여러차례 정부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나 이것을 북한이 의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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