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황장엽 망명]황장엽 사촌형수 서울산다

  • 입력 1997년 2월 13일 07시 39분


12일 한국에 망명을 신청한 북한의 黃長燁(황장엽)노동당국제담당비서의 핏줄이 서울에 살고 있었다. 주인공은 황씨의 사촌형 黃福淵(황복연)씨와 부인 申玉順(신옥순·70)씨. 복연씨는 지난 94년 73세로 세상을 뜨고 부인 신씨는 남편이 목사로 일하던 서울 강동구 하일동 중앙교회 사택에서 둘째 딸 성녹씨(42)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이날 밤 10시경 집에서 딸 및 외손녀 2명과 함께 늦은 저녁을 차리던 신씨는 취재진이 몰려들자 놀라워했다. 신씨는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한 듯했으나 천천히 남편 황씨(21년생·94년 1월 사망)에 대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신씨는 『생전에 남편이 가끔 「먼 친척 중에 황장엽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며 『그런데 두 사람이 사촌간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씨는 『아마도 북한의 요직에 있는 동생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함남 홍원군 삼호면 무계리에서 살며 결혼까지 했던 복연씨는 지난 51년 1.4후퇴 때 월남해 지난 52년 인천 출신의 처녀 신씨와 결혼했다. 복연씨는 월남후 북한에서부터 믿어오던 개신교에 심취해 경기 안양의 대한신학대를 졸업하고 목사가 됐다. 그후 성녹씨 등 1남5녀의 자녀를 두고 중앙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다 지난 94년 유언도 남기지 못한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10년전 남편이 갑자기 「북한에 부인과 두 아들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저를 속인 데 대해 용서를 빌며 「죽기 전에 주님의 축복으로 한번만이라도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복연씨는 지난 90년 북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 학구(51) 항구씨(48)의 생사나마 알아보겠다며 정부당국에 북한주민접촉신고를 내고 승인을 받았다. 복연씨가 장엽씨의 사촌형이라는 사실도 이때 낸 서류를 통해 밝혀졌다. 복연씨는 그후 북에 있는 둘째 형의 아들 원구씨와 대여섯차례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몇차례 돈도 보냈다. 원구씨는 복연씨가 세상을 떠난 뒤인 지난 94년 8월에 보낸 편지에서 「북한에 남아 있다고 말씀하신 숙모와 사촌들은 찾을 길이 없었다」고 적고 있다. 복연씨는 결국 북에 두고 온 부인과 아들의 생사를 모르고 세상을 떠났던 것. 성녹씨는 『아버지는 평소에 늘 「내가 죽으면 너희들이 내 대신 북에 있는 가족과 친지들을 꼭 찾아야 한다」며 다짐을 받곤 하셨다』고 전했다. 신씨는 『이제야 남편의 소원인 남북통일이 이뤄질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다』며 『황장엽씨가 서울에 오면 시동생으로 깍듯이 대접하며 한가족처럼 지내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철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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