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망명/최고위급탈북 파장]「주체사상」이 넘어왔다

  • 입력 1997년 2월 13일 07시 39분


북한 노동당 黃長燁(황장엽)비서의 망명은 외형으로는 남북관계사에서 최대의 충격적 사건에 속하며 내용으로는 북한을 지탱해온 주체사상의 자기부정(自己否定)이자 몰락이라고 할 수 있다. 주체사상은 북한을 떠받쳐온 국가운영의 기본철학이자 이데올로기다. 그런 주체사상 이론의 「설계사」이자 「전도사」가 북한을 버리고 망명한 것은 북한이 사상적으로 몰락했음을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체면을 중시하는 북한의 「대외적 자존심」이 크게 구겨졌을 것도 분명하다. 북한 최고위층의 망명은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 등 북한의 모든 대외정책에 영향을 끼치는등 일파만파의 파장을 가져올 것이 확실하다. 북한이 경제난 식량난 에너지난의 3난(難)에 시달리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황비서의 망명은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 말고도 최고권력층 내부의 해묵은 강온파 노선갈등이라는 또다른 어려움에 직면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한때 북한 권력서열 13위에 올랐을만큼 권력층의 최상층부에 속해 있었으며 특히 김일성 김정일 부자와 특수관계에 있었다. 공식직함은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와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국회 외무위원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남(對南) 및 대일(對日)문제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모스크바 유학시절에는 식당과 화장실 가는 길밖에 몰랐다는 말이 전해질만큼 학구파였던 그가 인생의 황혼기에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포기하고 망명한 것은 북한의 국가운영에 대한 회의와 강경파에 대한 개인적 불만 때문이었을 것으로 국내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철학박사에 김일성대학총장출신으로 온건하고 합리적인 그로서는 과격하고 호전적인 강경파의 득세로 북한이 갈수록 피폐해지는데 대해 불만과 반감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최근 들어 『시대가 변하는데 주체사상도 변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수해와 식량난 극복문제 및 대외관계 정책 등에 관해서도 김정일의 노선과 다른 발언을 한 것이 몇차례 정부당국에 감지됐었다. 그러나 그가 강경파와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났을 가능성도 있다. 망명직전의 일본방문에서 식량문제와 수교교섭재개문제를 해결할 보따리를 마련하지 못한 것도 망명결심의 한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떻든 그의 망명은 김정일 지도체제에 대한 북한 최고지식인의 불만의 표시이자 북한내부의 노선갈등과 권력핵심부의 동요징후를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사건이다. 「총체적 위기」에 빠진 북한의 심각한 사정을 그대로 표출한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일본방문에 수행했던 宋日昊(송일호)노동당 국제부과장 등 부하들을 버리고 심복인 金德弘(김덕홍)을 중국에서 만나 함께 망명한 것으로 보아 그는 망명을 사전에 면밀히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당국자들은 분석했다. 〈김기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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